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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전체 184건) 제목보기제목+내용
"4·3과 5·18 정신" 학술 조명
한국 현대사의 커다란 비극인 ‘제주4·3’과 ‘광주5·18’이 학술적으로 만난다.제주4·3연구소(소장 강창일)와 전남대 5·18연구소(소장 송정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이사장 박형규)는 15∼16일 전남대에서 ‘역...
좌용철  |  2003-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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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특별기획] <12>집단 매장지·유적지 발굴 보존
4·3을 한국 현대사 최대의 비극으로 몰고간 주민 집단살상은 1948년 가을부터 시작된 중산간 초토화와 예비검속, 군법회의 등에서 비롯됐다. 특히 1950년 한국전쟁 발발과 함께 집단총살·암매장된 예비검속자와 전국 ...
제민일보  |  2003-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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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유족들 "억눌린 삶"...지원책 필요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의 7개항의 건의문 가운데 하나가 생활이 어려운 4·3사건 관련 유가족들에 대한 실질적인 생계비 지원이다.그러나 1만4028명의 신고자에 대한 4·3 중앙위의 희생자 ...
김석주  |  2003-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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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진상보고서
특히 보고서는 4·3당시 국가 공권력에 의해 주민들이 무고하게 희생됐고, 희생자 가족들이 연좌제에 의해 감시당하고 사회 활동을 제약받았다는 사실을 명확히 하고 있다.4·3위원회는 보고서 의결때 6개월이내 새로운 자료...
제민일보  |  2003-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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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계엄령" 피해자·유가족, 희생자 선정 "해결 과제"
1947년 3·1 발포사건부터 1954년까지 수천명이 4·3과 관련해 형을 언도 받아 전국 각지 형무소에 수감됐다. 1948년과 1949년 2530명을 대상으로 실시된 군법회의는 재판서·공판조서 등 소송기록이 없고,...
제민일보  |  2003-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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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 사과·명예회복은 "의무"
4·3 진상규명 및 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이하 4·3 중앙위원회)가 진상보고서 채택과 함께 국가공권력에 의한 대규모 인권유린행위에 대한 정부의 사과와 추모기념일 지정을 건의한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그러나 극우보수세력...
제민일보  |  2003-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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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최대 3만명 사망·실종
4·3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에 신고된 1만4028명의 희생자 중 78.1%인 1만955명이 토벌대에 희생됐다는 사실은 ‘국가공권력에 의한 인권유린행위’라는 4·3의 성격을 명확하게 규명해주는 대목이다. ...
제민일보  |  2003-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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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학살 비극의 현장
이도영 박사가 미국 정부문서보존소에서 발굴한 사진들. ‘1950년 9월 전주, 적들에게 살해된 한국인들’이라는 미군측의 설명이 있으나 ...
제민일보  |  2003-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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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미군 집단학살 주도
1948년 11월 중순께부터 이듬해 3월까지 4개월에 걸친 중산간마을 초토화는 4·3 전개과정에서 가장 비극적이고 참혹한 주민 집단살상을 불렀다. 4·3 진상조사보고서는 그 책임을 당시 이승만 대통령과 주한미군사고문...
제민일보  |  2003-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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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을 일구는 사람들 <6> 재경·재일본 유족회
4·3특별법 제정과 정부의 첫 공식문서인 4·3진상조사보고서 채택은 100만 내외 도민과 전국의 양심 있는 인사들이 일궈낸 ‘역사적 승리’였다. 이는 반세기동안 짓눌려온 도민들의 한을 털어 내고 ‘평화와 인권’의 탄...
이태경  |  2003-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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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을 일구는 사람들 <6> 도의회·정치권
제주도의회 4·3특별위원회는 공공기관에서 4·3을 공론화 했다는 점만으로도 큰 의미를 갖는다. 특히 도의회 4·3특위 활동은 제주도민의 대표기관 입장에서 활동하는 것이어서 그 공신력 또한 컸으며 4·3 특별법 제정 ...
제민일보  |  2003-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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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새벽 봉기" 유혈사태 서막
4·3 진상보고서는 4·3 발발과 5·10선거 무산, 8·25 지하선거가 단독정부 수립을 앞두고 상황을 조기에 매듭지으려는 미군정의 의도에 따라 군·경의 강경진압으로 이어지는 흐름을 보여준다. 단순한 ‘치안상황’으로...
제민일보  |  2003-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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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을 일구는 사람들 <5> 언론
제주 4·3이 제주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사 최대의 비극 가운데 하나라는 점을 전국화 하는 데는 공신력 있는 언론매체의 보도가 큰 힘이...
김석주  |  2003-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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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4.3보고서기획단수석전문위원 양조훈씨 "인권차원서 4.3접근"
“언론은 먼 안목에서 역사의식을 갖고 진실을 추구하는데 힘써야 합니다”제주의 대표적인 진보 언론인으로서 지난 15년간 4·3 진상규명에 몰두해 온 양조훈 4·3진상조사보고서 작성기획단 수석전문위원(전 제민일보 편집국...
이태경  |  2003-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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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을 일구는 사람들 <4> 유족회
1948년 4월3일 그 이후 55년. 지금도 4·3 체험세대가 살아있고 유족은 부지기수다. 이들이 겪어야 했던 ‘레드 콤플렉스’와 연좌제로 인한 피해는 엄청났다. 제주공동체를 파국으로 몰고 간 4·3의 상흔들이 대물...
좌용철  |  2003-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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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유족회장 이성찬씨 "보고서 채택 크게 환영"
이성찬 4·3유족회장은 폭도자식이라는 질시와 냉대를 받으며 자랐다. 공직생활을 하면서는 비밀취급을 할 수도 없었다. 아버지를 원망하기도 하고 그저 4·3이 밉기만 하던 날도 많았다. 그런 그가 이제는 유족회의 수장으...
좌용철  |  2003-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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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제주도 인민들의 4·3무장 투쟁사」 저술 김민주씨
“4·3의 진상이 밝혀지지 못한 채 죽는 줄 알았는데 특별법 제정과 함께 진상조사보고서가 채택돼 감개가 무량하다” 4·3 당시 무장대에서 활동하다 검거돼 옥고를 치른 끝에 일본으로 건너가 생활하다 1963년 김봉현씨...
김석주  |  2003-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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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을 일구는 사람들 <3> 학계·연구소
역사는 도전과 응전의 결과라고 했던가. 반세기를 훌쩍 넘겨서야 4·3의 진상이 정부차원에서 밝혀지고 있다. 지난달 29일 「제주4·3사...
좌용철  |  2003-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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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다랑쉬굴은 4월1일 공개됐을까
사람들은 4·3당시 희생된 주민 11명의 유골이 발견된 다랑쉬굴이 92년 4월1일 언론을 통해 세상에 처음 공개된 것으로 알고 있다.여기서 “왜 4월3일이 아닌 4월1일에 공개됐을까”란 의문이 따라붙는다. 상식적으로...
좌용철  |  2003-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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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민들 통한 후세에 넘겨선 안돼"
제주도 4·3사건 행방불명인 진혼제가 1일 오전 10시부터 제주시 건입동 천마주유소 옆 옛 주정공장 터에서 우근민 제주도지사, 김영훈 ...
제민일보  |  2003-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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