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덕분에 공짜밥을 먹었다. 한 친구와 총선을 두고 한 내기에서 이겼기 때문이다. 총선전, 총선의 모양새를 가늠해 보는 우리의 말은 아귀가 착착 맞았다. 낙선운동은 효과를 낼 것이야! 맞아! 그래도 선거전의 지저분한 행태는 여전하겠지? 맞아! 그런데 우리는 투표율에 대해서만 서로 전망이 엇갈렸고, 설전 끝에 내기를 한 것이다.

그 친구는 투표율이 높아지리라 했다. 전국적 규모로 연대한 총선시민연대의 활동이 정치의식의 지각변동을 일으키지 않겠느냐는 것이 그 이유였다. 말하자면 각종 미디어를 통해 확산되는 '바꿔'의 열풍이 정치에 대한 관심과 참여를 유발한다는 것이다. 특히 젊은 층의 참여를 유발한다는 것이 그가 강조한 점이다.

나는 투표율이 높아질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 순진한 기대감이라고 반박했는데, 그 대강의 이유는 이랬다. 바꾸자고 하는데 마땅히 바꿀 만한 인물이 없을 때, 정치에 대한 관심이 일기보다는 오히려 외면하게 된다는 점이다. 또 젊은 층, 소위 영상세대는 그야말로 영상세대이기 때문에 선거열기에 쉽게 동승하지 않는다. 즉 입후보자에 대한 이런 저런 정보를 습득한다고 해서 그것이 곧 행위에로 연결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게다가 우리의 정치판은 자신의 정치적 무관심을 변호할만한 핑계거리를 충분히 제공해주고 있지 않은가.

내가 투표율에 대해서 낙관하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보다도 정치의식의 변화는 쉽지 않고 더욱이 정치의식을 상쇄시키는 문화에 대한 경계 때문이었다. 누구나 경제적 문제에는 민감하게 반응한다. 자기이익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치문제에 대해서는 한 발치 떨어져 있다. 이것이 만연된 시장경제적 문화가 만들어낸 심성이고, 정치적 효과이다.

어쨌든 투표율은 60% 이하로 떨어졌고, 나는 공짜밥을 먹긴 먹었다. 그 밥이 총선 덕인지, 무관심한 유권자 덕인지 헷갈리면서 떠올리는 숟가락 너머로 새로운 논쟁거리가 오갔다.

그 하나는 제 1당이 누구인가이다. 기권자가 40%를 넘었는데도 제 1당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인가? 만약 기표란에 기권란이 있었다면 상황은 어찌 되었을 것인가? 혹시 가장 확실하게 지지율이 증가하는 정당은 기권자들의 당이 아닌가?

또 하나의 거리는 투표율이 낮아진 것을 내심으로 가장 반긴 자가 누구일까 하는 문제다. 나처럼 투표율을 두고 내기한 사람이라고 하며 한 바탕 웃었다만, 그 웃음의 뒷끝이 서늘했다. 시민들의 정치참여 내지 자발적 투표율이 높아질수록 피곤한 사람들이 있을 터인데, 그들이 투표율 하락을 반겼을 것이다. 그들이 누구일까? 이 땅의 기득권 세력들일까? 그중에서도 정치권일까, 경제권일까?

분명한 것은 민주정치의 역사이래 그 어느 정권도 정치참여의 활성화를 원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입으로야 '국민에 의한' 정치를 외쳐대지만, 그 외침은 결코 시민들의 정치참여에 의해서 정치체계에 압력을 행사해 달라는 의미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자유민주주의이론의 기틀을 잡았던 죤 로크로부터 최근에 주목받고 있는 새뮤엘 헌팅턴에 이르기까지, 그들 이론의 핵심중의 하나는 적절한 양의 정치적 무관심과 비참여는 효과적인 통치를 보장한다는 것 아니던가! 이론가들의 입장이 이런 정도라면 실제 정치권에서 권력을 행사하는 이들의 입장이야 뻔하다.

밥숟가락을 놓으면서, 우리는 몇 가지 합의점에 도달했다. 총선시민연대가 벌인 낙선운동의 효과는 대단한 것이라고. 그러나 그 효과를 흥행물로 써먹으면서 정치의식 발전을 운운하는 정치권과 언론의 장난에 놀아나지 말자고. 앞으로 여전히 김빠지는 정치판이 연출되더라도 내심에서 좋아할 놈들을 염두에 둬서 끈질기게 투표장으로 가자고 말이다.<하순애·전 제주문화포럼 원장>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