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차원의 공식 보고서인 ‘제주 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는 4·3이 발발한지 한달이 지난 1948년 5월5일 오전 7시 딘 미 군정장관이 안재홍 민정장관, 조병옥 경무부장 등을 이끌고 제주에서 비밀리에 개최한 회의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제59군정중대장 맨스필드 중령, 제주도지사 유해진, 제9연대장 김익렬 중령, 제주경찰감찰청장 최천 등 군·경 수뇌부가 참석했던 이 회의는 4.3의 ‘운명’을 갈라놓은 분수령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4월28일 김달삼과 평화협상을 성사시킨 김익렬 연대장은 “4·3의 원인은 복합적이며, 입산자가 늘어나는 것은 경찰의 실책에도 기인한다”며 “적의를 가진 폭도와 일반민중 동조자를 분리시켜 폭도를 도민들로부터 고립시키기 위해 무력위압과 선무귀순공작을 병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병옥은 “저기 공산주의 청년 한사람 앉아있소”라고 외치며 “국제공자주의자로 이북에서 공산주의 간부로서 활약하고 있는 부친의 지령을 받아 행동하고 있다”고 주장, 격분한 김 연대장이 달려들어 몸싸움을 벌이면서 회의는 난장판으로 종결된다.

5월6일 김익렬 연대장 박진경 중령 전격 교체에 이은 강경진압, 5월18일 조병옥 경무부장 응원경찰 450명 제주 파견(7월말 제주경찰 병력 2000명중 응원경찰 1500명) 등 일련의 흐름에서 5월5일 비밀회의의 의미와 조병옥의 역할이 제주도민들에게 미친 영향을 감지하게 된다.

반세기가 넘은 지난달 28일 조병옥의 아들인 조순형 의원이 제2야당인 민주당 대표로 선출됐다.

원칙을 중시하고 ‘쓴소리’에 주저함이 없는 소신으로 정평이 난 그의 민주당 대표 선출은 마땅히 축하해줄 일이다. 그러나 한나라당에 동조해 ‘특검 재의결’로 ‘힘자랑’을 하고 김대중·김영삼 전 대통령을 만나 부친을 소재삼아 파안대소하는 조 대표의 모습을 이쁘게만 볼수 없는 것은 그‘악연’ 때문이다.

이제는 노무현 대통령이 정부를 대표해 과거 국가권력의 잘못을 사과한 4·3에 대해 조 대표가 개인이 아닌 제2야당의 대표로서 말할 차례다. 그것이 그의 선친과 제주도민들과의 악연을 풀어가는 첫 걸음이다.

<오석준·정치부장 겸 기동취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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