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55주기를 맞은 제주 4·3에 대한 논의가 가파르게 진행되고 있다. 지난 3월 29일 제주 4·3사건의 진상이 정부에 의해 일부나마 규명되고, 평화공원의 기공식과 10월 15일 제주 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가 최종 채택되었다. 그리고 급기야 10월 31일 노무현 대통령이 제주 4·3사건에 대해 공식 사과를 표명하기에 이르렀다. 다사다난했던 2003년의 제주 4·3의 성과는 이렇게 다부졌다.

제주 4·3은 미군정기간을 전후해 발생한 제주도민 집단학살(Genocide)이었고 국가공권력에 의한 인권유린행위였지만 정작 제주도민은 4·3의 진실찾기에서 소외되고 금기시되어 왔다. 그러나 이번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 채택과 대통령의 사과로 인해 다소간의 명예회복과 이념의 깊은 골을 치유하게 된 것이다. 특히, 참여정부수반인 대통령이 내년 제주 4·3사건 56주년 추모식에 하기로 했던 약속(?)과는 달리 정부의 공식입장을 앞당겨 발표한 것은 소원했던 도민사회에 화합을 이뤄내고 새로운 시대로의 전환을 알린 뜻있는 쾌거였다.

이와 맞물려 제주를 평화의 최적지로 이끄는 움직임도 주시된다. 작년말 화순항 해군기지 건설계획을 백지화시키고, 남북민족 평화축전 개최, 제2회 평화포럼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돌이켜보면 제주 평화의 섬도 참으로 지근거리에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제주 4·3의 지난한 아픔을 안고 있는 제주인들은 평화와 인권의 소중함을 알고 있다. 따라서 국가폭력에 의한 도민들의 희생을 보듬고 제주 평화의 섬이 추진된다면 기쁨이 배가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제주 4·3해결과 평화의 섬 추진에 있어 한가지 의구심이 드는 게 있다. 바로 제주 4·3과 도민이 뒷전에 빠진 평화의 섬 추진이다. 제주 4·3이 단지 제주의 관광홍보를 위한 브랜드로 전락하고 있으며, 국제자유도시의 경제적 파이를 키우기 위해 제주를 평화의 섬으로 포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제주 4·3의 정신을 기억하지 않는 평화의 섬 추진은 안된다. 경제특구모형(국제자유도시화)이라는 경제적 이익을 전면에 내세우기만 할 뿐, 제주 4·3 정신이 훼손되는 평화의 섬 추진은 어불성설이다.

제주는 평화지대 모형(중립화 또는 비무장화)으로서 도민의 역량을 모아 평화의 섬으로 가꾸어야 한다. 4·3을 해결한 도민의 자부심으로 제주 4·3은 이제 인권과 평화가 가득한 인류의 보편적인 메시지가 되어야 한다. 4·3은 이제 제주의 큰 자산이다. 경제적인 가치에 집착하여 제주 4·3을 배제한 평화의 섬은 공허하다. 또한, 화해와 상생의 정신으로 제주를 알려야 한다. 국제관광지의 명성 뒤에 숨은 ‘잠들지 않는 남도’에서 벗어나야 한다. 4?3은 더 이상 부끄러운 과거가 아니다. 제주 ‘평화의 섬’의 진정성은 4?3의 가치가 인류의 평화와 인권의 가치로 승화될 때 생겨날 것이다.

마지막으로 오랫 동안 4·3해결에 아낌없는 노력을 기울인 정부와 국회, 유족회, 관련 연구단체와 시민사회단체를 포함하여 모든 제주도민의 열정에 제주4·3도민연대 운영위원으로서 감사를 드린다. 제주 4·3은 대통령의 사과 한마디로 치유될 수 있는 것이 아님은 자명하다. 아직도 미흡한 진상규명이 지속적으로 이뤄져야함은 물론, 그동안 피해를 입은 희생자에 대한 국가차원의 배려가 이뤄져야 하고, 미국의 책임문제와 책임자처벌도 이뤄져야 한다. 이렇듯 4·3의 완전한 해결과 평화의 섬은 많은 여정을 남겨두고 있지만 이 긴 여정의 종착역은 바로 4·3의 정신이 깃든 평화의 섬 제주를 만드는 것이라 하겠다.

<김용철·회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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