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위원회, 22일「4·3진상조사보고서」발간

   
 
   
 
제주4·3을 국가공권력에 의한 인권유린으로 규정해 노무현 대통령의 공식 사과까지 이끌어냈던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가 드디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4·3특별법이 제정·공포(2000년 1월12일)된 후 3년 11개월, 진상조사보고서작성기획단이 발족(2001년 1월17일)한 지 2년 11개월만의 쾌거다.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위원장 고건 국무총리)는 22일 진상조사보고서를 발간, 정부기관과 국회·전국 국공립도서관·교육기관·언론기관·유관단체 등에 배포했다.

진상조사보고서는 제주도민의 한(恨)의 역사인 4·3의 진상을 규명하는 한편, 해방 이후 국가권력에 의한 민간인 학살 사건에 대해 정부 차원에서 조사를 거쳐 발간된 최초의 공식 보고서란 의미가 있다.

지난 3월29일 공식 채택될 줄 알았던 진상조사보고서는 당시 정부가 “4·3은 공산폭동”이라던 우익들의 반발을 우려, ‘6개월 유보’란 조건부로 의결 처리함으로써 도민들의 ‘한 풀이’역시 6개월 뒤로 늦춰지는 우여곡절 끝에 지난 10월15일 최종 확정된 바 있다.

이번에 발간된 진상조사보고서에는 종전에 확정된 보고서 내용이외에도, 4·3사건에 대한 노 대통령의 발표문과 고건 국무총리 명의의 서문, 미국 등에서 입수한 4·3사건 관련사진, 4·3사건 주요일지, 특별법 관련법령, 찾아보기 등이 새롭게 실렸다.

보고서에 실린 4·3관련사진은 모두 46장. 4·3당시 사진 37장과 4·3특별법 제정 이후의 사진 9장이 화보로 꾸며졌다.

이 사진들은 미국국립문서기록관리청과 제주주둔 고문관출신의 미국인·한국군 지휘관·정부기록보존소 등에 소장되어 있던 것을 기획단이 입수,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게 됐다.

특히 1948년 5월5일 딘 군정장관을 비롯한 미군정 수뇌부가 ‘평화냐, 토벌이냐’는 4·3의 진로문제를 놓고, 격론을 벌이다 조병옥 경무부장과 김익렬 연대장 사이에 육탄전이 벌어졌던 ‘5·5 최고수뇌회의’참석자들이 그날 제주비행장에 도착한 생생한 모습을 모두 담은 스냅사진(1면)이 발굴돼 눈길을 끌고 있다.

4·3사건일지는 사건의 기점인 1947년 3월1일부터 한라산 금족령이 해제된 1954년 9월21일까지 7년 7개월 동안의 진행된 사항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놓고 있다.

보고서의 표지는 제주출신 서예가 현병찬 선생의 글씨와 강요배 화백의 그림으로 디자인되었다.

한편 노무현 대통령은 이 보고서가 채택된 직후인 지난 10월31일 4·3위원회로부터 조사 결과를 보고 받은 뒤 제주를 직접 찾아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대통령으로서 과거 국가권력의 잘못에 대해 유족과 제주도민에게 사과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표명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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