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는 국민이 주인임을 의미한다. 4월 13일 선거가 끝난 후 개표과정을 지켜보면서 국민들은 바로 '우리가 주인'임을 실감했다. 3표 차이로 당락이 결정되는 등 40여 선거구에서의 박빙승부는 한 표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새삼 돋보이게 했다. 선거야말로 진정 민주주의의 꽃이라 할 만하다.

이번 선거에서도 설마 했던 동-서간 지역감정의 골이 이번에도 여지없이 재확인되어 안타깝다. 영남에서의 한나라당의 싹쓸이와 호남에서의 민주당의 사실상의 전승은 새천년이 되어도 전혀 변하지 않았다. 자기 동네 출신을 밀어주는 각 지역 내 소지역주의의 '묻지마 투표'도 그대로이다. '바꿔 바꿔'하고 소리 높이 외쳐댔지만, 제대로 바뀐 것이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이야 못 마땅하면 당연히 바꿔야겠지만, 동시에 유권자도 바뀌어야 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그래서 여기 저기서 비판과 자성의 목소리가 큰 공감을 얻고 있는 모양이다. 반성을 하고 있어 그것으로 한편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지역투표에 대해 한탄이나 하고 야단법석 대는 것은 이제 그만 두자. 그 보다는 왜 국민들이 지역투표를 하는 지를 보다 냉정하게 따져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 지역투표를 하게 된 데에는 그 나름의 합당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국민들을 믿고 그 합당한 이유를 존중해야 하지 않을까. 지역투표를 버리라고 강권하기보다는 차라리 그에 순응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쪽으로 가면 안될까. 인구대표로 구성되는 현행의 하원제와는 별도로 지역대표로 구성되는 상원제를 도입함으로써 인해전술로 몰아치는 영-호남의 대지역주의를 견제하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다.

57.2%라는 저조한 투표율도 아쉬운 대목이다. 민주주의의 핵심 가운데 하나가 참여일진대, 10명 중 적어도 4명은 선거에 불참함으로써 주인의 권리 행사가 포기된 데에 대해 여기저기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더욱이 만약 선거불참의 상당수가 단순한 기권이 아닌 제도권정치에 대한 거부라든가 정치적 냉소나 무관심을 표현한 것이라면, 사태는 심각하다. 국민 스스로의 결정과 선택이 민주주의의 중요한 가치라면, 향후 선거 일정은 유권자인 국민들이 정치권에 의해 위로부터 제시되는 후보자에 대해 아래로부터 거부할 수 있는 기회와 권리를 갖도록 짜여져야 하지 않을까.

예를 들어 등록된 후보 모두에 대해 반대하는 칸을 투표용지 한 구석에 둔다면, 거부의 의사는 선거 불참이 아니라 선거 참여로 나타날 것이다. 그리하여 만약 거부 항목에 가장 많이 표를 주었다면, 기존 후보자를 배제한 가운데 재선거를 실시하는 것이 조금은 번거롭고 비용이 들겠지만 보다 민의를 반영한 대표선출 방안이 아니겠는가. 국민들의 상당수가 투표는 해야겠고 찍을 사람은 없고 해서 덜 미운 사람을 찍는다는 것이 지역투표로 나타난 것일 수도 있다. 만약 그렇다면, 국민들로 하여금 후보제안까지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어떤가. 후보 등록의 길을 보다 쉽게 열어주는 것은 물론이고, 후보자에 대한 거부 의사까지도 투표로 표현할 수 있어야 국민선택이 명실상부하게 보장되는 것이 아닐까.

투표 역시 그 행위에는 기회비용이 뒤따른다. 누구를 찍을 것인가를 정하기 위해서 많든 적든 정보를 갖고 있어야 하며, 투표 당일 시간도 들여야 한다. 이런 비용을 조금이라도 부담하려고 하거나 보상을 해 줄 생각은 하지 않은 채, 국민에게 투표를 해 달라고 도덕적으로 요구만 하고 있다. 정말 국민의 투표 참여를 높여 잔치가 되게 하고자 한다면, 예를 들어 투표를 겸한 경품행사를 벌이거나 아니면 복권이라도 하나씩 나누어주는 것은 어떤가.<양길현·제주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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