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4월 3일이다. 오늘 52주년을 맞아 돌아가신 영령들을 추모하기 위해 제단 앞에 모여드는 제주도민들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도 밝을 것이다. 그것은 바로 지난해 제주도민들 모두의 노력으로, 그리고 각계의 성원에 힘입어 그토록 바라던 특별법이 제정되었기 때문이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국가가 피해 사실을 확인하고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는 작업을 벌여 후손들의 한을 풀어주고 위령탑도 건립해 줄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들 가슴 속에는 봄꽃들이 꽃망을울 터뜨리듯이 새로운 희망이 자라기 시작했다.

그러나 단지 특별법이 제정되었다고 모든 작업이 금방 제주도민들의 아픈 가슴을 감싸줄 정도로 순조롭게 진행되리라 기대해서는 안된다. 지난 10여년 동안 많은 이들이 진상 규명 작업과 위령 사업을 전개하면서 느꼈겠지만, 우리의 노력을 가로막고 방해하는 세력이 한국 사회에는 여전히 크게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만큼 전보다 더 신중하면서도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가장 먼저 진행되어야 할 진상 규명 작업은 4·3의 진실을 밝히고, 희생자의 넋을 달래기 위한 공식적인 활동의 시작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구체적인 자료를 체계적으로 수집하고 정리하여 실상을 파악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4·3사건이 왜 일어났고,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떻게 전개되었는가 ? 그리고 피해는 정말 얼마나 어떻게 입었는가 ? 하는 문제들을 명확한 근거에 입각해서 학문적인 차원에서 규명한 연구 작업이 나와야 한다. 그래야 앞으로 4·3희생자 유족에 대한 국가 배상이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을지도 분명해 질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특별법을 실천에 옮길 위원회 구성을 잘 해야 한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현재 도당국이 특별법에 앞서 추진하고 있는 위령 공원을 비롯한 각종 기념사업이다. 나는 위령공원을 만들고 위령비와 기념관을 건립하는 일이 후손들과 전체 도민들, 나아가 한국인 모두에게 '맺힌 한을 풀어주는' 용서와 화합의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 제주도 당국이 위령공원사업을 특별법이 제정되기 전부터 서둘러 추진했다고 믿고 있지만, 이번 위령사업이 통곡의 세월을 그냥 덮어버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진정한 화합의 계기로 승화되려면 고쳐야 할 일이 있다.

진상 규명과 피해 보상 문제를 논의하기도 전에 위령 사업을 추진하는 것이 갖는 문제점도 적지 않지만, 그에 못지 않게 위령 사업을 공무원들이 아무런 체계적인 계획도 없이 마구 밀어붙이는 것은 더 큰 문제를 불러 일으킬 지도 모른다.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의 영령들을 위로한다고 수백억의 예산을 들여 국립묘지로 조성한 망월동 묘역이 건축설계회사와 조각가들에게만 맡기는 바람에 역사성이 결여된 박제화된 공원으로 전락했다고 비난받고 있음을 기억하자.

나는 지난해 가을 오키나와에서 일제말기 태평양전쟁기에 일본천황군과 미군의 전쟁 틈바구니에서 희생당한 수만명의 억울한 죽음을 달래는 평화기념공원, 기념비, 그리고 기념사료관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 때 당시 희생당한 여고생들을 추모하는 '희메유리 기념관'도 방문했었는데, 그 곳은 한 해 백만명 이상이 방문하는 명소였다. 그 기념관은 건물을 먼저 짓고 나서 그 속에 자료들을 적당히 배치한 것이 아니라, 기념관을 짓기 위해 5년이라는 구상 기간을 거치고, 마스터 플랜이 확정된 다음 비로소 건물을 지었는데, 막상 공사 기간은 3년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한다.

위령공원과 위령비, 그리고 기념관은 젊은이들에게 지나간 아픈 역사를 일깨워주는, 그래서 다시는 아픈 역사를 되풀이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도록 만들어주는 살아 있는 역사의 교육장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세계사에서 유례가 없는 참극을 딛고 일어선 제주인들의 평화의 상징으로 만들었으면 좋겠다. 그래야 후대에게 분명한 교훈으로 남겨줄 수 있다.

위령사업이 중요하고 시급한 만큼, 행정당국이 귀를 막고 실적 위주로 추진하는 잘못을 범하지 말고, 도민들의 중지를 모아 민주적으로 추진하기 바란다. 그래야 영령들도 비로소 한을 풀고 편히 쉴 수 있을 것이며, 도민들은 진정으로 민을 위해 일하는 달라진 관의 모습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조성윤·제주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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