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은 어떤 논제를 놓고 여러 사람이 자신의 의견을 말하며 의논하는 것이다. 토론회의 기원은 아주 오래다. 중세 서양에서는 어떠한 문제에 주민들의 의견이 달리하거나 승패를 결정할 일이 있으면 주민들을 찬성측과 반대측으로 나눠 각각의 의견을 개진하도록 했었다.

그러나 이 때에도 일정한 룰이 있었다. 찬성과 반대 양쪽의 인원수와 시간을 똑같이 할애한다거나 발언순서와 질문에 대한 답변과 반론의 방식을 정하고 실시했다. 그리고 타임키퍼라는 진행자를 두어 토론의 내용을 공평하게 채점해서 집계하도록 했다. 또한 토론회에 참가한 청중들의 반응이 토론전과 토론후에 어떻게 달라지는가도 중요한 채점요소가 됐다.

16대 총선이 열흘 앞으로 다가오면서 신문과 방송 그리고 사회단체가 주관하는 각종 토론회가 부쩍 많아지고 있다. 선거 후보자에 대한 토론회는 어떤 쟁점을 놓고 찬반의 의견을 논의하는 것이 아니어서 긴박감이 다소 떨어지는 점도 없지 않으나 지역의 대표를 뽑는다는 점에서 유권자들의 관심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하다.

토론회의 백미는 아무래도 주민간에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되는 지역현안이 논제로 대두됐을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서로의 의견이 극명하게 다른 만큼 주민들의 의견이 적극적으로 개진될 뿐만 아니라 찬반의 양상도 쉽게 구분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역현안과 같은 토론회에서는 무엇보다 상대방의 얘기를 경청하고 그것을 수용하고자 하는 기본적인 자세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아직도 요원한 것이 우리의 토론문화이다.

지난 3월31일에 개최된 송악산 관광지개발 토론회도 그와 비슷한 사례가 될 수 있다. 방청석을 가득 채운 지역주민들이 자신과 의견이 다른 토론자의 얘기를 가로 막거나 고성을 지르는 경우가 속출해 참으로 안타까웠다.

토론자 대부분이 환경훼손을 최소화할 수 있는 구체적 보존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주장이었음에도 주민들은 막무가내로 주민합의가 이뤄진 사업을 왜 못하게 하느냐는 것이었다.

이제 우리의 토론문화도 성숙해질 때가 됐다. 처음부터 상대방 의견을 완전히 무시한 채 자신의 의견만을 강요하는 것은 토론이 아니다. 그것은 주먹을 행사하지 않았을 뿐이지 폭력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김종배·기획관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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