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로 한반도 통일국가의 대업을 이룩한 고려 태조 왕건.그는 누가 뭐래도 한반도 역사의 중심축에 서있는 위대한 인물임에 틀림이 없다.건국 신화(神話)를 등에 업지 않은 국가 창업의 당사자로서,그리고 사실상 단군이래 한민족 초유의 민족통일 국가를 이룩한 인물이란 관점에서 그렇다.

 그는 출신 성분부터 그 이전 역사 속의 창업자들과 색 다르다.과거 삼한(三韓)의 여러 왕들처럼 신격화된 인물은 아니다.조상 대대로 해상 무역에 종사해온 지방의 호족 출신임을 당당하게 여기는 인물이다.해상호족 출신 답게,일반전투는 물론 해전에 능했다고 한다.그러나 그가 특별히 능숙했던 솜씨는 전투가 아니라 처세술과 '민심 다루기' 였다고 전해진다.그리고 전투에 능했으면서도 피비린내 나는 싸움은 가급적 피해 갔다고 한다.민생안전 도모가 그 명분이었다.이를테면 궁예의 휘하에 있으면서 그 세력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 새로운 나라 고려를 세운 것이라든지,피한방울 흘리지 않고 -그것도 겸양의 미덕을 발휘해가면서- 기울어가는 신라를 접수한 솜씨등이 그것이다.민심을 지나치게 예의주시하는 그 였기에 측근으로부터 우유부단하다는 평도 없지 않았다.고려 건국의 거사마저도 마누라의 성화에 등떠밀렸다고 하니 알만하다.

 그는 신라 귀족이 아닌 지방호족 출신이었기에 민심잡기가 더러는 수월했는지 모른다.어째거나 그는 신라 왕실의 골품제도에 저항하는 이른바 반체제 세력들과,신라왕실과 귀족들의 수탈에 항거하는 농민들을 끌어 안는데 성공했다.천하를 함께 다투던 후백제의 견훤은 이점에 있어 왕건보다 한수 아래였다.견훤 그는 신라왕실을 습격 쑥대밭을 만들어 신라왕실로부터 적개심과 공포의 대상이었다.반면 왕건은 경순왕이 신하의 예를 갖추고 항복을 자청하고 나서도,얼른 받아 들이지 않았다.그러고도 천하를 거머쥐었다.천하의 근본인 민심이 가까이 있었기 때문이다.

 역사 속의 가장 위대한 인물임에도 태조 왕건은 우리에게 이방인처럼 보여 왔다.조선왕조의 건국시조인 이성계나,심지어 삼국시대의 인물들에 비춰 크게 각광을 받지 못했다.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제 시대가 달라져서인가, 엊그제부터 시작된 KBS의 대하 역사물인 사극 '태조 왕건'은 그래서 특별한 의미가 있다.단순히 역사 속의 인물 조명차원의 사극이기 전에 오랜 세월 잊혀졌던,아니 애써 외면해 왔던 베일 속의 '위대한 시대'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라는 점에서 귀추가 주목된다.<고홍철·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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