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역사와 한민족 정체성 세미나

청년 시절 정비석 선생의「산정무한」이라는 작품을 읽으며 금강산에 대한 그리움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 가는 길은 단순히 관광이 아니어서 무거운 마음이었다. 저 연변, 만주 우리 조상들이 대대로 살아왔고, 지금도 살고 있는 고구려와 발해의 유물유적들을 중국이 자기들 것이라고 억지를 부리고 있는 판이다. 그래서 그것에 대한 반대 세미나를 하기 위한 것이었다. 버스를 타고 강원도 고성으로 가서 갈대 우거진 철책선을 넘어가 망향단 부근의 급조된 건물에서 출국 신고를 하고, 다시 금강산으로 가서 꼭 같은 입국 절차를 밟아야 하는 마음은 울적했다.


최근에 들어 중국의 동북공정(東北工程)이라는 생소한 숙어가 거의 매일 같이 신문과 방송 등 매스컴에 오르내리고 있다. 그러면 이 동북공정이란 무슨 말인가. 중국은 2002년 2월 사회과학원 산하의‘중국변강사지(邊疆史地)연구중심’에서 동북공정이라는 말을 처음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는 중국 정부의 대대적인 지원 아래 고구려는 물론 고조선, 부여, 발해와 현재의 한국에 대한 연구를 하는 작업이다. 그런데 여기서 그들은 고구려의 전체 역사를 현재 및 미래의 국가 발전 전략에 합당하게 논리적으로 포장하여 그들 나라의 역사 속에 편입시키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첫째 그들은 고구려의 영토가 역사적으로 중국의 영토라고 주장하고 있다.

둘째 고구려는 대대로 중국에 조공을 바치는 등 신속 관계에 있었다는 주장이다.

그리고 일부에서 아는 것처럼 그 시대를 대변하는 고분벽화와 광개토대왕비 같은 고구려의 유적과 유물을 유네스코가 지정하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려는 것이 최종 목적이다.

19세기말에서 20세기초에 걸쳐 개편되기 시작한 세계 질서가 21세기 들어 훨씬 더 강력한 진동과 큰 진폭으로 다시 재편되고 있는데, 그 중심에 우리가 초등학교 세계사에서 배운 잠자는 사자 중화민국이 깨어 버티고 있는 것이다.

한국소설가협회에서는 한 달여 전에 이미 이런 중국의 억지에 대해 전체 회원들이 서울 시내 일원에서 시위를 벌인 바 있으며, 2004년 3월 1일 금강산 해금강호텔 연회장에서 다시 세미나를 가졌던 것이다. 부디 77명의 소설가들이 금강산까지 가게된 데는 북한 쪽 소설가들의 동참을 바랐던 것이나 이 기대는 이뤄지지 않았다.

이날 오후 유현종, 김병총 두 소설가와 동국대 사학과 윤명철 교수가 주제발표를 했으며, 윤후명 정건영 노순자씨와 필자가 토론자로 나서 밤늦게까지 열띤 토론을 벌였다. 여기서 그 내용 전체를 소개하기는 분량이 너무 많아 다만 나의 토론 요지만을 간추려 정리해봤다.

우리나라가 5,000년 전 저 만주벌에서 고조선으로부터 시작하여 고구려-발해-고려로 이어져 왔다는 역사적 사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잘 아는 바이다. 나는 90년대 초반 중국을 거쳐 연변으로 가서 압록강 북쪽에 흩어져 있는 고구려의 유적들과 광개토대왕의 비도 돌아보았다. 그 후 박물관에 근무할 당시 미리 탁본해 놓은 그 비문을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접할 기회가 있었는데, 비의 규모도 그렇거니와 비문이 장문인데 놀란 적이 있다. 그들은 이 비석 하나에 고구려의 역사와 포부 전체를 담아 두려고 했던 것이라고 여겨졌다.

<오성찬·소설가>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