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는 제주의 궁극적인 미래의 비전을 평화의 섬으로 삼고 그 실현을 위해 애써왔다. 그러나 이 평화의 섬 구상은 4·3운동가들과 학자들 사이에서 4·3의 미래와 연관하여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난 개념으로, 널리 공감을 얻으면서 구체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제주도민의 역사적 질곡, 그 중에서도 특히 4·3과 연관되어 4·3의 비극을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이라는 과거지향적인 한 풀이에서 끝날 것이 아니라 생명과 인권, 자유와 평등, 가해자와 피해자 간의 화해와 상생의 정신의 교육의 장으로 발전시켜야 하고, 이 모든 개념을 아우르는 가치인 평화를 내세워 미래지향적으로 승화되어야 한다는 것이 바로 평화의 섬 구상이다. 이 구상은 섬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일어난, 6·25를 제외한 해방 후의 가장 큰 비극이며 동시에 가해자와 피해자가 한 마을 공동체에, 아니 한 가정에 동시에 존재하면서 증오와 갈등을 화해와 상생으로 극복해 온 평화 이루기의 과정이라는 점에서 당위성을 지닌다.

그러나 평화의 섬은 지정만으로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 4·3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유족들이 이념공세와 연좌제 등으로 이 사회에서 사람대접을 받지 못하고 경제적, 사회적으로 소외되어 왔는데 그 현실을 치유하지 못하고 어떻게 평화의 섬을 말할 수 있겠는가? 세계 평화에 기여하는 4·3운동이 되어야

또한 행정당국은 4·3평화재단을 설립하여 4·3과 평화에 대한 계속적인 연구와 자료축적이 이루어지도록 지속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그리고 제주특별자치도의 운용과 정신에 있어서도 4·3의 극복과 승화인 평화의 개념이 구체적으로 실천되도록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특히 제주도당국은 앞으로 유족회와 관련단체와 연구소의 활동에 적극 지원, 협력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며, 평화의 섬 추진과 관련해서도 그동안 4·3 운동에 적극 참여해 왔던 학자들과 관계자들을 제쳐놓고, 전혀 관심이 없었던 그룹이 평화의 전문가인양 나서게 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또한 유족회와 시민단체들 역시 4·3을 독점화, 사유화하려는 유혹에서 벗어나 문호를 개방하고, 4·3운동과 정신을 전국의 인권, 민주운동단체와 공유하여 4·3을 편협한 제주지역의 일로 축소시키지 않고 전국적, 범세계적, 인류적 교훈으로 승화시킬 수 있도록 협력체제를 갖추어야 할 것이다. 군 의문사나 민주화과정의 의문사 진상규명 사업, 6·25전후 민간인 대량학살 사건의 진상규명과 배상 사업, 국가보안법 철폐 운동, 북녘동포돕기 사랑의 감귤보내기 운동이나 한민족평화문화체육축전 지원, 사형제도 폐지 운동, 반전 운동 등 국내와 세계적 인권과 평화운동에 4·3의 이름으로 적극 참여해야 한다. 그래서 4·3이 남북의 화해와 통일, 더 나아가 세계평화에 기여하게 될 때 비로서 4·3은 완전히 해결되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제 자리를 찾았다고는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임문철·4·3중앙위원·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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