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신두완씨가 불출마를 선언했다. 그것도 기자회견을 통해서다. 그러나 어찌된 영문인지 대부분의 언론들은 이에 침묵했다. 뉴스 가치가 없어서일까.

그래서 그는 이전처럼 걸어서 또 걸어서 언론사를 찾아 다녔다. 보도를 요청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우격다짐도, 통사정도 먹혀들지 않았다. 혼자서 북치고 장구친 꼴이었다. 그가 늘 자랑삼는 명예도지사를 이렇게 푸대접해도 괜찮은 것일까.

그는 재작년 우근민 전지사의 배려로 1일 명예도지사를 지냈다. 그것도 남들보다 하루가 더많은 연이틀을 지사 자리에 앉았다. 그의 명함에는 이를 입증하는 사진이 컬러로 실려있다. 한번 명예도지사면 영원한 명예도지사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

그의 경력은 이뿐만이 아니다. 이력으로만 보면 누구보다도 화려한 편이다. 신익희 국회의장 비서와 윤보선 대통령 보좌역, 민주당 상무위원, 신민당 제주도당위원장, 3선개헌반대투쟁제주도위원장, 민권당 사무총장, 한나라당 중앙위 자문위원등을 역임했다. 그는 과거를 돌아볼 때마다 “5대 대통령 선거때 당선이 확실시되던 신익희선생만 서거되지 않았더라면 신두완이 인생도 많이 달라졌을 것”이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한다.

그는 제주정치사에도 독특한 기록을 남기고 있다. 6전 6패의 진기록이다. 국회의원에 4번, 도지사 선거에 2번이나 도전했지만 그때마다 고배를 들었다. 그것도 기탁금마저 되돌려 받지 못할 정도였다. 그는 낙선할 때마다 신문광고를 통해 ‘괸당선거에 울었고, 한라산은 알고 있다’고 한탄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남이야 웃든 말든 계속해서 출사표를 던졌다. 그래서 그의 끊임없는 출마는 이제 ‘무모한 도전’이나 ‘승산없는 게임’의 대명사로 회자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에도 많은 사람들은 그의 출마를 자신있게 점쳐왔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같은 예상을 완전히 뒤엎었다. 너무도 뜻밖의 일이었다. 그에게 있어서는 출마보다도 불출마를 선언하는게 더 어려운 결정인지 모른다. 그런데도 언론은 그것을 알아주지 않아 더욱 서운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는 왜 이런 결심을 했을까. 5천만원이나 되는 기탁금 마련에 실패했기 때문이라는게 중론이다. 그렇지만 그는 달랐다.“10대 소년이었던 4·3항쟁 당시 경찰관에 끌려가 총살직전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그날부터 지금까지 가시밭길을 마다않고 제주도지사가 되는 꿈을 키워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를 위해 불출마한다”고 선언했다. 그의 나이 어느덧 75세인데 아직도 정치생명은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에 대해 여전히 관심을 두지않는 것같다. 그의 불출마가 선거에 영향을 줄만큼 아무런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선지 굳이 ‘선언’까지 해야할 이유가 어디 있느냐는 냉소적 반응도 나온다.

하지만 그의 불출마도 선거에 기여하는게 있다. 모처럼 유력후보 둘만의 싸움판을 마련해준 것이다. 또 유권자와 취재기자의 어깨를 한결 가볍게 해준 것도 어쩌면 고마운 일이다. 따지고보면 이 모두가 그의 불출마 덕분이 아니던가. 여야 후보들도 그의 불출마가 헛되지 않도록 정정당당한 정책대결을 펼쳐 보여야할 것이다.

<진성범·주필>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