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압 환자를 대하면서 항상 생각나는 것은 각자 맥이 매우 다르다는 사실이다. 맥에 따라 치료법이 다를 수밖에 없으므로 당연히 혈압을 조절하거나 치료하는 약이 사람마다 달라져야 할 것이다. 이것이 한의사의 고민이자 보람이다.

맥으로 무엇을 알 수 있는가? 사람들은 흔히 맥을 보지도 않고 맥이 없다는 말을 한다. 그만큼 맥이란 말이 보편화되어 있다. 즉 맥이란 우리 기운과 같은 말로 쓰인다. 맥이 없다는 말은 정말 동맥이나 심장이 뛰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라 맥이 힘없이 뛴다, 우리가 기력이 몹시 지쳐 있다는 뜻이다. 이 기운을 원기라든지 생명력이라 불러도 좋다.

생명은 여러 개가 아니라 하나이므로 맥에서 총괄해서 보는데 먼저 상중하에서 기능이 어떤지를 금방 알아차릴 수 있다. 손목의 동맥이 잘 나타나는 곳에 손가락을 갖다 대고 살짝 눌렀을 때와, 조금 더 눌렀을 때와 깊이 눌렀을 때를 비교하면 처음에는 심장과 폐, 그 다음에는 췌장과 위, 제일 누른 곳에서는 간과 콩팥과 자궁 등의 기능이 개괄적으로 나타난다. 물론 이것을 알려면 각 부위에 나타나는 정상적인 맥 모양을 미리 알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고혈압인 경우를 보면 손가락을 살짝 갖다 대었을 때부터 맥이 불뚝불뚝하는 소위 위쪽이 항진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처음 눌러서는 맥이 나타나지 않고 중간쯤 눌러 들어가야 비로소 맥이 불뚝거리다가 더 누르면 없어져 버리는 사람도 있고, 중간까지 별로 느껴지지 않다가 상당히 눌러야 비로소 맥이 불뚝거리는 사람도 있다.

이러한 맥의 차이는 많은 것을 시사한다. 어떤 병이든 인체의 상중하에 불균형이 생긴다. 우리 몸은 장기끼리 밀접히 연관되어 있으므로 가령 심장병에 심장에 부담이 가는 이유를 생각하면 그것이 폐일 수도 있고 위장일 수도 있고 간이나 콩팥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혈압의 경우에도 이 맥의 불균형을 바로잡아 주는 것은 우선 혈압을 진정시키는 효과 정도가 아니라 나아가서 혈압이 다시 올라갈 필요가 없도록 근본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 되는 것이다. 맥이 정상이면서 혈압이 높은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맥을 바로잡는다는 것은, 몸 전체의 균형을 바로잡는다는 의미에서, 맥이 어떤 모양인지 관계없이 일률적으로 혈압강하제를 투여하는 것과는 상당히 다른 치료 개념이 되는 것이다.

<황학수·한방의·제민일보한방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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