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발탄 안고 잠자기,폭격사이로 조개캐기,총알 피하며 밭일 하기...미국사람들은 아마도 흉내도 못낼걸?

엊그제 경기도 화성군 미군기 사격장 주변 마을인 매향리 주민들의 울분을 희화화한 모 일간지의 시사만평 내용이다.최근 폭탄투하 사고 피해보상에는 아랑곳 없이 사격훈련만을 계속하고 있는 주한미군측을 신랄하게 꼬집은 내용임은 물론이다.태연자약한 미군측, 일그러진 주민들의 얼굴.한장의 삽화는 과거 15년전의 서울미문화원 점거농성사태를 오버랩시킨다.
80년 5월 23일 70여명의 운동권 학생들이 서울 미문화원에 잠입,기습적인 점거농성 시위를 벌였다.학생들은 나흘간의 점거 농성을 통해 광주학살과 관련한 미국의 공개사과와 군부독재 지원의 즉각적인 중단을 촉구하고 나섰다.일단의 대학생들에 의한 미문화원 기습점거농성사건은 한미 양국 모두에게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특히 미국의 충격은 적지 않았다.당시까지만해도 한국은 지구촌에서 유일하게 '양키 고홈'의 반미시위가 없었던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수도 서울의 도심 한복판에서 벌어진 이사건은 국내외에 큰 파문을 일으키며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도 남았다.미국은 나름대로 사건의 경위를 해명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됐고,광주의 진실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촉발시켰다.이때부터 반미운동이 서서히 물밑 운동권의 쟁점으로 자리하기 시작했다.일반 국민들 역시 미국에 대해 과거와는 다른 감정이 자리하기 시작했다.미국은 과연 누구인가 하는...

사실 그랬다.그동안 미국은 우리에게 구세주로 각인되어 있었다.일제의 압제로부터 우리를 해방시켜준 나라,6.25전쟁의 은인,피로서 맺어진 맹방,한반도 평화의 수호신이란 수도 없이 많은 관용구들이 따라 붙어 있었다.미문화원 사건과 매향리 '미군폭탄 투하' 사건은 이것이 환상임을 일깨워 준다.미국은 더 이상 구세주가 아닌 먼이웃일 따름이라는 것을 다시한번 확인시켜 주고 있음에 다름아니다.

그렇다.따지고 보면 애시당초 그들은 대전 승전국으로서 일제를 대신해 한반도에 진주했을 따름이다.우방이라란 이름으로 그들의 국가이익을 위해 막강한 힘을 휘둘러온,동북아의 세력균형을 위해 지금도 한반도에 버티고 있는 외세일 따름이다.은인,맹방 평화의 수호신과 같은 형용사는 단지 우리가 챙겨야할 우리 몫의 반사적 이익일 뿐이다.<고홍철·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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