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일씨의 죽음을 유가족들과 함께 애도하며 국민을 보호하지 못하는 무능한 정부를 비난하는 국민들의 외침은 정당한 것이다. 그들은 국가의 존재 이유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하는 것이다. 국가는 국민의 안녕과 복리를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다. 만일 국가가 우리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지 않는다면 그런 국가는 존재해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4·3의 와중에서 대한민국 정부는 우리 제주도민을 적으로 간주하여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3만을 넘는 대량학살을 자행했다. 자신을 죽이려는 사람에 대항하여 싸우다 상대를 죽음에 이르게 하더라도 정당방위로서 정당성이 인정되는 것이 상식이라면, 도민들이 이런 정부에 대항하여 생존을 추구하는 것은 법 이전에 생명의 법칙으로 정당한 것이다. 만일 그런 상황에서 아무런 항거도 하지 않고 그저 앉아서 죽기만을 기다린다면 자신의 생명을 지키야 할 최고의 의무를 다하지 않는 셈이 되는 것이다. 생존권을 위한 저항이란 이런 의미에서 4·3을 항쟁이라 부른다면 그것은 옳은 말이다.
내 생명을 지키는 일은 본능으로 보나, 윤리로 보나 그 무엇보다도 우선적인 의무다. 그러나 여기에 머물지 않고 더 나아가 내 생명 뿐 아니라 다른 생명도 소중하다는 것을 알고 다른 생명도 지켜줘야 하는 것이 인간으로서의 당연한 도리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그렇게 소중한 자신의 생명을 더 많은 생명을 구하기 위해 기꺼이 내어놓는다면 가장 위대한 사랑의 행위가 되는 것이다. 이제 4·3운동은 소극적인 항쟁을 넘어서 적극적으로 사랑을 실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리고 그 다른 이름은 평화운동이다. 미국의 꼭두각시가 되지 말자고 민족자존심을 부추기는 것도 좋다. 석유 몇 방울 더 얻으려다 많은 아랍국가들에게 미움을 사게 되니 소탐대실이라며 더 많은 국익을 말해도 좋다. 우리 아들들을 죽음으로 내몰 수 없다고 외쳐도 좋다. 그러나 반전운동은 우리의 생명과 자존심을 위한, 더 더구나 국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더 큰 이상인 사랑과 평화에 기초해야 한다. 응징은 테러와 다를 바 없는 증오의 산물이며, 국익은 이기심의 또 다른 표현일 뿐, 아랍에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고자 소망했던 김선일씨의 희생을 욕되게 할 뿐이다. 그를 참혹하게 살해한 테러범이라는 사람들까지 포함한 이라크인들과 지금도 어디선가 내전의 소용돌이 속에 살해되는 이들, 메마른 들판에서 굶어 죽어가는 북녘 어린이들을 포함해 모든 인류의 아픔을 우리 마음으로 끌어안고 함께 나누고자 할 때 평화는 이미 우리 마음에서 싹이 트는 것이다.
<임문철·중앙성당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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