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요즘 ‘어차피’와 ‘아무튼’을 어디에서 배워 와 한참 연습 중이다.“어차피 구슬동자를 사야 되요”라든지 “아무튼 그림을 그려요”라든지 도무지 상황에 맞지 않는 비어법적인 말에 식구들은 배꼽을 잡고 웃기 마련이다.그래 어차피 배워야 하는 말들인데 아무튼 열심히 연습하는 것이 중요할 터이다.

 어차피와 아무튼은 모두 ‘어떤 상황이나 조건이 어떻든 간에’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유사성을 지닌 수식어이다.그러나 그 쓰임새는 약간씩 때로는 많이 다르다.

 원래 어차피는 어차어피(於此於彼)의 준말로 ‘이렇게 하든지 저렇게 하든지’ 또는 ‘이러거나 저러거나’라는 뜻이다.그렇다면 이 말은 일단 벌어진 사실 또는 사건에 대해 주체가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에 대해 언급할 때 사용되는 수식어로 종속절에 부가된다.어차피 선거도 끝났고,어차피 떠날 사람은 떠났으며,어차피 개발 승인은 난 것이고,어차피 망하고 말았으니,어차피 헤어진 마당에,어차피 죽 써서 개 준 꼴이 되고 말았으니,어차피 지역 경제는 엉망이 되고,어차피 너는 너고 나는 나인데 등등.어차피가 참 많이 쓰이기도 한다.

 그런데 핵심은 어차피에 있는 것이 아니고 그 다음에 이어지는 주절에 있기 마련이다.‘어차피 선거는 끝났으니 당선자의 공약이 제대로 지켜지는지 두 눈 뜨고 볼 일이다’도 가능하고,‘어차피 선거가 끝났으니 다음 선거를 기다려 보자’도 가능하며,‘어차피 선거는 끝났고 이제 내 마음대로 하면 되지’도 가능하다.

 그런데 대부분의 경우 어차피는 일련의 시련과 굴곡 속에서 체념이나 방종의 뜻을 깊이 함유한 상태에서 쓰여진다.‘어차피 이렇게 된 마당에 나라고 별 수 있나’라든지,‘어차피 마음대로 될 수 없는 일 그대로 놔두자’라든지.이렇게 보면 어차피는 포기의 수순을 밟기 위해 부가되는 수식어인 듯하다.그러나 생각해 보면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는 어차피 죽는다.어차피의 가장 큰 목적지는 곧 죽음인 셈이다.그렇다,우리 모두는 어차피 죽는다.이 땅에서 완전히 사라진다.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되나? 원래 아무튼의 표준말은 아뭏든이다.이후 표준말의 규칙이 부르는 대로 쓰는 것으로 바뀌면서 아무튼이 된 듯하다.여튼간 아무튼은 ‘아무러하든지’의 준말로 ‘어떻든 간에’의 뜻으로 사용된다.이 말 역시 어차피와 마찬가지로 종속절의 의미를 지닌다.다만 어차피가 주로 포기나 체념의 뜻을 지녔다면 아무튼은 상대에 대한 강요나 억제,그리고 자신의 주장이나 분발이라는 이중성을 지니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아무튼 당신은 구구로 잠자코 있어라’는 말이나,‘아무튼 이번 일은 도저히 참을 수 없다’는 말이 이에 해당한다.어차피에 비해 아무튼은 주체의 견해에 대한 보다 강력한 뒷받침이 있어야 가능한 말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 강력한 뒷받침은 상식이나 사회정의보다는 개체의 주관적 판단이나 욕망일 경우가 많다.아무튼의 결단이 발언자의 개인적 욕망에 의해 좌지우지된다면 그것만큼 한심한 결과를 초래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아무튼 ‘아무튼’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스스로에게 부끄러움이 없어야 할 것이다.

 왜,아까운 지면에서 뜬금없이 국어 강의인가?

 우리 모두의 삶이거나 그 흔적으로서 행위나 사고는 무엇보다 먼저 언어로 이루어진다.어차피와 아무튼은 우리 자신의 욕망과 충족,그리고 갈등과 체념의 증거물인 셈이다.어차피 우리의 삶은 서로가 서로에게 얽혀 있다.그 다중의 매듭은 끊으라고 있는 것이 아니라 더욱 견고한 밧줄,삶의 튼실한 구조물을 만들기 위한 것이다.

 이 때 우리에게 주어지는 어차피의 포기나 굴종,아무튼의 주관적 욕망과 결단은 과연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 것일까? 어차피나 아무튼이나 중요한 것은 다시 한번 주위를 살피고 스스로에게 부끄러움이 없어야 되는 일이 아닐는지.아무튼!<심규호·산업정보대 교수·중국어통역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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