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응과 변신의 노회한 정치인,기회포착의 명수 처세의 대가,사라지지 않는 정치무대의 노병,쿠데타 원조,영원한 2인자...

 김종필전총리에게 따라 다니는 음과 양의 숱한 수식어들이다.5·16쿠데타와 함께 나는 새도 떨어 뜨린다는 중앙정보부를 창설 했고,3共에서 4共의 오랜 세월 제2인자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향유 했던 JP 김종필.그의 2인자 생활은 5共 출범과 함께 막을 내리는 듯 했다.하지만 1여3야의 지역 황금분할시대,3당 합당을 통해 집권여당의 대표로 화려한 변신을 한다.그리고 YS문민정부로부터 축출되는 정치적 상황에서는 이른바 왕따 야당이었던 국민회의 김대중총재와 손을 잡고 2인자로 복귀한다.DJP연합으로 반세기만에 여·야의 수평적 정권교체의 대역사를 이루면서다.

 그의 변신은 또다시 이어졌다.지난 4월 치러진 16대 총선에서 그는 공동여당이기를 거부했다.신보수주의의 깃발을 세우고 야당선언을 하며 또한번의 변신을 시도 했다.그러나 결과는 총선 참패의 쓴잔을 들고 말았다.그러한 그가 엊그제 제주에 왔다.국민의 정부로부터 집요한 공동여당 복원의 추파를 받고 있는 시점에서다.제주에 온 그가 아직은 일련의 정국과 관련 입을 꽉 다물고 있다.하지만 제주체류가 향후 그의 또다른 변신의 계기가 될 것이란 관측은 어렵지 않다.지난 대통령선거를 1년여 앞두고 그가 제주에 왔을 때다.그는 제주에 올 때마다 '경세제민(經世濟民)'을 떠 올린다고 했다.제주도의 '제(濟)'는 민(民)을 다스린다는 제민의 뜻을 담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선조들이 모범적인 나라발전,제민역할을 기대하고 지은 이름이 아니냐는 반문이었다.

 말이 났으니 말이지 JP에 대한 도민들의 정서는 그야말로 애와 증이 함께한다고 해서 크게 틀리지 않다.60년대 제주돌밭을 일궈 감귤밭을 만들었다는 데서 애정과 연민이,5·16쿠데타에 의해 제주의 한인 '4·3' 진상규명작업이 중단됐던 데 대한 미움이 그것이다.특히 지난 16대 총선에서는 신보수주의 기치와 함께 당내에서 제주 4·3특별법을 폄하하기를 서슴지 않아 도민들이 냉가슴 앓이를 해야 했다.

 공산당이 아니면 누구와도 손을 잡겠다고 호언했던 JP.그가 제주를 떠나면서 과연 누구와 손을 잡고 2인자의 자기 자리를 지킬 것인지.사라질 줄 모르는 노정객의 운신과 행보는 시대가 바뀌어도 여전히 세인들의 관심사인가.<고홍철·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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