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식 정무부지사가 지난주 모처럼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외자유치의 사명을 띠고 취임한지 백일을 맞아서이다. 화두는 역시 외자유치였다. 그러나 빈수레가 요란하다고 했던가.

제주의 외자유치 실적은 지난 국정감사에서도 도마위에 올랐다. 전국에서 꼴찌를 면치 못했기 때문이다. 제주도종합개발계획이 시행된 90년대이래 제주에 투자된 외자는 437만 달러에 불과하다. 그중에서도 절반이상은 재일동포의 몫이다. 이를 뺀 실제투자는 200만 달러(24억원)에 그치고 있다. 그나마 그것도 중국식당 개점을 가리키는 것이다. 기가 막히다 못해 말문이 막힐 정도다.

그동안 제주도는 입만 열면 외자유치를 외쳐왔다. 특히 국제자유도시로 변신을 꾀하면서 부터는 거의 ‘올인’하고 있다. 그런데도 실적은 여전히 ‘꽝’이다. 왜 그럴까. 투자메리트가 열악해서 매력을 끌지 못하기 때문이다.

먼저 인·허가만해도 그렇다. 절차가 매우 까다롭고 복잡해 최소 2년이상 걸린다. 어디 그뿐인가. 행정의 경직성은 더 큰 문제이다. 법과 규정만 앞세우는 공무원들의 벽을 넘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원 스톱 서비스’도 구호로만 그치고 있다. 이해단체나 주민의 반발이 법보다 더 중요한 잣대로 활용될 때도 있다.

이때문에 웬만한 인내와 지구력 없이는 제주에서 관광개발사업을 하지 못한다고 한다. 첫삽을 뜨기도 전에 진이 다 빠지고 만다는 것이다. 결코 엄살이 아니다. 이를 대변해주는 일화가 있다. 얼마전 제주동물테마파크 사업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각급기관·단체장등이 참석한 가운데 인사말을 하던 회사대표가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나처럼 잘 알려진 제주토박이도 고향에서 이런 사업을 하기가 매우 힘든데 외지에서 온 사업가는 오죽하겠는가. 또 연줄도 파워도 없는 사람은 두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는 도내 명문고와 대학을 나와 도의원과 봉사단체 총재를 지낸 명망가이다. 경영자단체회장을 맡기도 하는등 줄곧 고향에서 사업의지를 불태워왔다. 그런데도 인허가 과정에서 장벽에 부딪힐때가 많아 중도포기까지 생각할만큼 어려움이 많았다는 것이다.

이렇게 제주도의 외자유치는 이중성을 띠고 있다. 외자유치를 위해 여기저기 쫓아다니면서도 정작 제발로 찾아오는 민자는 걷어차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이율배반적인 자세를 버리지 않는한 외자유치는 구두선에 그칠 수밖에 없다. 아무리 자치단체 간부들이 떼지어 해외로 뛰어본들 외자유치는 성사되기 어려울 것이다. 고래심줄같은 도민의 혈세만 축낼 따름이다.

그보다 앞서 제주도는 우선 외국인과 국내 기업들이 사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데 힘써야 한다. 환경파괴 위험이 없는 범위내에서 수익성도 보장해줘야 할 것이다. 행정절차의 간소화는 더욱 필수적이다.

경상남도 공무원들처럼 반대하는 주민들을 직접 설득하고 나설수 있어야 자본이 들어온다. 오해를 무릅쓰고서라도 업자의 애로를 들어주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그렇지않고 아무리 외자유치만 외쳐봐도 백년하청이다.

또한 순수 토착자본을 냉대해서도 안된다. 오히려 인센티브를 줘야한다. 따지고보면 외자도 토착자본이 여의치 않기 때문에 유치하려는게 아니던가. 그런데도 도내 자치단체들은 도민주체개발을 강조하면서도 정작 토착자본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앉아있는 꿩은 놔두고 나는 꿩만 잡으려는 꼴이다.
<진성범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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