덧없이 흘러가는 계절의 뒤안길에서 너를 경쟁의 벌판으로 내보내고 이렇게 우두커니 혼자 서보니 너랑 보낸 3년의 세월이 참 빠르게 흘러버렸음에 허전하기 이를 데 없구나.

교정 한쪽에 외롭게 선 잎을 떠나보낸 은행나무가 오늘따라 뚜렷이 한눈에 들어옴이 웬일일까? 이 초겨울 아침이 이렇게 차갑게 느껴져 옴은 또 웬일일까?

참 고생 많았지! 그동안 밝은 웃음 한번 흔쾌히 던져주지 못하고 오로지 학력향상에 매진하기를 질책하면서 쏟아 부었던 말들이 오늘은 후회가 된다.

내 자신조차도 되뇌이기가 식상해져버린 ‘대학’ ‘수능’ ‘선택형’ ‘맞춤형 입시’ 등 허울 좋은 단어들이리 부끄럽구나.

이제 3년이란 지난 시간을 뒤돌아보니 교육 강국인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많은 몸부림으로 가시밭길을 헤쳐오던 네 모습이 너무나 선연히 떠오른다.

7차교육과정 첫 적용으로 처음 수월하리라 생각했던 ‘상아탑’까지의 길이 왜 이리 힘겨웠는지. 새로운 입시 제도에 맞추느라, 선택의 폭이 넓어진만큼 더 많은 고민을 하느라, 유난히도 힘들었던 한해였다.

그래 얼마나 힘들었겠니, 수고했어.

이제 그동안 못다 했던 얘기를 오랜만에 나누어 보자꾸나. 헤르만 헤세의 지성과 사랑이야기도 좋고, 아니면 끝이 보이지 않는 저 광활한 평원을 선생님이랑 크게 소리 지르며 힘껏 달려보면 어떻겠니? 내가 너의 손을 꼭 잡아 줄테니. 참으로 어려운 교육 온실에서 줄기차게 달려온 그 동안 너의 노력의 대가를 어떻게 보상하면 좋을까?

K야!

이제 저 광활한 대륙을 달려온 젊은 장군의 기개를 목청껏 재현해보는 것은 어떻겠니. ‘왔노라 싸웠노라 이겼노라’라고 말이야.

그래 맞아. 이제 끝난 게 아니라 이긴거야. 이제부터 시작이란 말야. 그것도 준비 없는 출발이 아니라 노오란 숲길로 향하는 힘찬 발소리로 말야. 성공이면 어떻고 실패면 어떻겠니. 이제 시작에 불과한데 다소 미약하면 어떻겠니.

오늘의 결과를 겸허하게 되새기며 앞으로도 계속 가야할 길이 있지 않겠니.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이 문뜩 떠오르는구나. 두 길을 다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어차피 훗날 훗날에 어디선가 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사람도 있을게고 말이야.

너에게 언젠가 한 선배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난다.

‘견해차’도 있겠지만, 시작은 그의 총명함에 비해 조금은 초라해 보였지만 부단한 노력 끝에 자신의 길을 찾아나선 모습은 ‘성공’이란 말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다. 바른 교육자가 되고자 명문대 대신 지방대 영어교육과로 진학해 교단을 밟았다가 삶의 방향을 바꿔 행정고시 전국수석까지 차지한 것은 스스로 자신의 길을 개척해 나가는 모습에서 분명 많은 의미를 전달하리라 생각한다.

머지않아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해가 뜨겠지.

자, 어서와 내 가슴에 기대어라.

큰 가슴으로 더욱 큰 가슴으로 오늘만은 세상사는 이야기나 해보자꾸나.
<남녕고 진학부장·함창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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