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2년은 제2차대전을 일으킨 일본이 그 전쟁수행에 혈안이 되고 있었으며 나는 목포상업학교의 4학년에 재학하고 있었습니다.학교는 승전을 위한 근로동원과 구호성 교육으로 일관하였으며 일본의 식민지였던 우리나라는 청장년들의 징병과 징용 그리고 미혼여성에 대한 정신대의 차출 등으로 나날을 엄험하게 보낸 암울한 시기였습니다.

 이렇게 더할 여지가 없는 상황에서 나에게 한가닥 항심이 있었다면 그것은 일기를 쓰는 것과 책을 읽는 일이었습니다.그러나 읽을만한 책을 구하기란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으며 나는 주로 헌 책방을 드나들었고 그 묵은 책에는 언더라인을 해놓은 부분들이 있어서 이것은 저에게 더 깊히 헤아려보도록 하는 시사성으로도 느껴졌습니다.

 어느 날 나는 헌책방에서 토마스만의 「魔의 山」이란 책을 구하였고 이른 아침부터 책을 읽다가 그만 등교시간을 놓치고 말았습니다.조바심을 안고 하숙방에 쪼그려앉아 종일 책을 읽었고 독후감겸 일기장을 쓰고 있는데 뜻밖에도 선생님이 찾아온게 아닙니까.책을 읽다가 시간을 놓쳐 결석을 했노라고 말씀을 드렸더니 책을 읽은 소감을 얘기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읽은 책과 일기장을 내놓았습니다.그때의 일기장에는 대충 다음과 같은 내용인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한스 카스돌프’는 그토록도 사랑을 고백했는데 ‘산다는 것은 여성 그 자체와 나’라는 말을 남기고 ‘쇼야’는 마의 산을 떠나버렸다.‘여성 그 자체’란 도대체 무슨 뜻일까.‘한스 카스돌프’역시 역사적 혼란을 뚫고 나가는데는 ‘사랑의 휴머니즘’밖에 없다고 노상 읊조리더니 결국은 죽음을 택하였다.이러한 것들은 사랑의 종말일까.사랑의 탄생일까.전몰장병의 위령제는 내일도 있다고 하는데….

 선생님은 이윽하게 일기장을 보시더니,거기에 哀惜身命이란 글귀 하나를 써주셨으며 나의 어깨를 쓰다듬을뿐 아무 말씀도 아니하였습니다.哀惜身命,그것은 목숨을 아끼라는 뜻이겠습니다만은 궁극적으로 생명이 안고 있는 모순을 수용하는 노력이며 그 모순을 극복하려는 의지인 것으로 무언속에 주시는 선생님의 깊은 애정인가 합니다.

 분명 선생님은 교육하면서 교육에 빠지지 아니하였고 언제나 따뜻한 밀착감과 즐거운 충만감으로 제자들에게 와닿는 생활의 안내자였습니다.

 연령이 들면 지나간 추억들이 다시 마알간 슬픔으로 고인다고 하였습니다만은 저는 그 이듬해의 봄 일본의 朝日新聞 신춘문예 단시(短詩)부문에 입상을 하였고,선생님은 저의 등단을 나보다도 더 기뻐하시면서 축하의 책 한권을 저에게 주셨습니다.‘실러’의 「서풍에 부치는 노래」그 책속의 다음 귀절에는 선생님의 언더라인이 선명하게 그어져 있었습니다.

 ‘깃발은 올려졌다.그러나 이 깃발은 승리의 깃발이 아니라 승리를 향한 신호의 깃발! 오! 예언의 나팔을 불어다오’.선생님하면 어찌 한분뿐이겠습니까만은 여기의 그리운 선생님이란 일본인 倉品(구리시나)선생님이시며 진정 그분이야말로 저의 인생을 이길로 이끌어주신 마음의 師父인가 합니다.〈고봉식·제주도 문화재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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