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발발 직후 강경 토벌작전의 분기점이 됐던 ‘오라리 방화사건’을 되새기는 행사가 사건 발생 52년만인 1일 오후8시 사건 현장인 제주시 오라동 연미마을 마을회관에서 열렸다.

 제주4·3행방불명인유족회,농민회,민주노총,전교조,제총협(준),양용찬열사추모사업회,노래빛 사월,제주주민자치연대 등 도내 8개 단체가 주최한 이날 행사는 노래공연 및 오라리 방화사건 관련 비디오 상영이 있었다.

 ‘오라리 방화사건’이란 4·3 발발 20여일 만인 4월 28일 토벌대측 책임자인 김익렬 9연대장과 무장대 총책 김달삼 간에 △72시간내 전투중지 △무장해제 △하산후 신변보장 등 3개 조건에 합의하는 ‘4·28평화협상’을 성사시켰으나,이 협상 직후인 5월 1일 경찰우익청년단이 오라리 연미마을을 방화해 평화협상을 무산시킴으로써 4·3의 전개과정에 큰 분기점이 된 사건을 말한다.

 이 사건 이후 미군과 경찰 측에서는 무장대가 마을을 방화했다고 강변하면서 평화협상을 추진했던 김익렬 연대장을 전격해임시키고 무차별 강경토벌 작전을 벌였다.

 한편 행사를 주최한 단체들은 ‘미국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을 통해 “4·28평화회담을 깬 오라리 방화사건에는 미국이 개입,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면서 “미국은 4·3당시의 모든 작전명령 자료를 공개하고 미국의 작전명령권 하에서 자행된 군·경의 학살만행과 초토화작전에 대해 책임져라”고 요구했다.<김종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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