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려서부터 많은 식구들과 살았다. 부모님께서 비교적 일찍 제주에서 서울로 올라가 집을 장만하신 까닭에 서울에 다니러 간 많은 친인척들이 잠시나마 우리 집에 기거한 적이 많았다. 그래서 우리 부모님과 4남매, 할아버지와 할머니까지 8명은 기본이고 그 위에 제주에서 서울로 공부하러 올라온 삼촌, 외삼촌, 사촌 형, 사촌 누나들까지 합하면 언제나 10명 이상이 식사를 했다. 어떤 때는 우리 집에서 하숙을 하던 인근 대학교 학생들, 가내공업 형태로 운영했던 아버님 공장의 노동자들도 함께 식사할 기회가 있었다. 3남1녀의 막내였던 나는 식사시간이 되면 커다란 '호마이카 상'을 두 개 펴놓고 12-3개 이상의 수저를 놓은 뒤 어머니께서 퍼주신 밥그릇을 제자리에 갔다 놓으며 어머니를 도와야 했다. 늘 많은 수의 사람이 함께 식사하지만 그래도 고정된 자리, 특정한 수저와 밥그릇이 있었다. 젓가락은 함께 쓰는 일이 많았지만 숟가락과 밥그릇만큼은 각자의 것이 있었다. 나는 그것을 당연시했다.

요즘 나는 제주에 살면서 여느 집안처럼 집사람과 세 아이를 포함해 다섯 식구가 한 식탁에 모여 앉아 식사를 한다. 특히 일요일 저녁만큼은 아빠인 내가 준비하고 설거지까지 마치기로 식구들과 약속했다. 내 스스로 가사노동의 중요성을 몸으로 체험하고 아이들에게 일하는 삶의 모범을 보이기 위해 의도적으로 내린 결정이었다. 이것 때문에 남편 혹은 아버지로서의 권위를 잃어버릴지 모른다는 염려는 결코 해 보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식사준비를 할 때면 아이들까지 돕겠다고 나서고, 집사람도 간혹 요리법을 안내하거나 설거지를 도와줘서 집안의 일치를 이루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이 일이 이웃 주부들에게 알려지자 집사람은 많은 부러움을 샀고 나 역시 착한 남편으로 평가되었다. 하지만 동네 아저씨들로부터는 남자 망신 다 시킨다는 핀잔을 듣기도 했다. 어찌되었건 나는 1년 이상 이 약속을 70% 이상의 수준에서 지켜오고 있다. 이 점에 비추어 보면 나는 여성문제에 대해 매우 '진보적인' 남편이다.

하지만 우리 집 식탁에선 지켜야 할 또 하나의 규칙이 있다. 가장으로서 내 숟가락과 젓가락을 다른 식구들의 그것과 구별한다는 점이다. 언젠가 나는 밥을 먹다가 문득 어릴 때 밥상을 차리며 식구들 수저와 밥그릇까지 구분해 놓던 일이 떠올랐다. 동시에 우리 집을 살펴보니 모든 식구가 같은 수저, 같은 그릇으로 밥을 먹고 있는 게 아니가, 내 마음속에선 이런 식사문화가 혹시 가장인 나의 권위를 약화시키는 하나의 요인이 아닐까라는 우려가 싹텄다. 어른을 어른으로 공경할 줄 모르는 무질서도 이런 편의주의적 생활방식에서부터 싹트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그래서 그 이후론 식사준비에 다소 불편하더라도 내 수저만큼은 따로 준비한다. 아이들이 식탁에 수저를 준비할 때 아빠 수저를 구분하게 하는 것이다. 집안에 어른의 수저를 따로 준비해 두지 않는 가정이 많은 요즘의 현실에 비추어보면 나는 매우 '보수적인' 가장인 셈이다.

객관적으로 보면 나의 이 두 가지 생활 방식이 모순적이겠지만, 나 자신은 어떤 모순감도 느끼지 못하며 살아간다. 학교에서 공부한 현대적 가치와 가정에서부터 몸에 익힌 전통적 가치가 내 안에 공존하고 있다. 더군다나 나는 이것을 모순으로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왜 그럴까, 뿐만 아니라 내 삶 안에서 어떤 때는 현대적 가치가 어떤 때는 전통적 가치가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까닭은 무엇일까. 노무현 후보가 '부마항쟁'이라는 민주화 운동의 전통을 지닌 부산에서 큰 표 차로 낙선한 이유를 찾는 것만큼 쉽지 않을 듯 싶다. 그래도 가정의 달인 5월이 가기 전에는 해답을 찾아야 할텐데.<김민호·제주교대 교수·교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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