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우리 생활 속에 여러모로 깊이 들어와 있다.함께 지낸 세월이 하도 길다 보니 어떤 게 내 것이고 무엇이 미국 것인지조차 분간하기 힘들 지경이다.실용주의 사고가 사람들의 일상에 아주 자연스럽게 녹아내렸다.문화는 자극과 영향을 넘어 각 부면에 골고루 스며들고 아이들의 식성까지 바꿔 놓았다.이런 동화 무감각의 연장선상에서 때때로 착각하지 말란 법 없다.이를테면 서울복판의 100만평 용산기지도 그렇다.우리와는 무관한 망각의 땅인가 헷갈리기 쉽다.

 평소에는 이처럼 미국을 의식하지 않다가도 그들의 기지 주변에서 사건이 터지면 퍼뜩 정신을 차리게 된다.새삼스럽게 미국은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매향리의 분노’는 그러므로 지난 날의 무수한 피해 사례를 오버랩시킨다.동떨어진 일이 아닌 것이다.

 매향리는 이름만이 아름다울 뿐이었다.마을에서 빤히 보이는 바다에 미 공군의 사격연습장이 생긴 것이 1955년이면 어느덧 반세기에 가깝다.주말만 배고 항상 폭음에 시달리고 폭탄과 기총소사 위험에 노출된 가운데 대를 이어 살았다.얼마나 지겨웠을까.

 정부는 늦어도 다음달까지 한미행정협정 개정 협상을 미측과 벌일 모양이다.본래 맺은 협정이 워낙 일방적이었기 때문에 웬만큼 손질해서는 턱도 없을 것이며 그만큼 어려운 고비가 많을 터이다.미군 피의자의 신병인도 시기를 앞당긴다든지 환경 조항을 신설하는 문제 등이 만만찮다.하지만 의당 서둘러야 할 시대적 요청이다.두 나라의 떳떳한 동반자 관계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인 까닭에 줄기찬 개정 여론을 반미·친미 따위 이항대립 시각으로 재단하면 안된다.그야말로 편협하고 낡은 발상이다.자존과 인권 신장의 안목으로 파악해야 옳다.

 이런 측면에서 요근래의 미군 범죄사건 내지 상황은 대부분이 한국민 멸시와 관련되어 있다.파주시 미군 영내에 폭발물 설치 첩보가 들어왔을 때도 6시간 뒤에야 시청쪽에 알렸다.미군은 당일,주민은 다음날 대피했다.1994∼99년 동안 미8군 근방에서 주·정차를 위반한 미군 9100여명중 96%가 과태료 납부를 기피하고 내뺐다.금액으로 따지면 3억7000여만원이었다.납득하기 힘들다.

 주민 대표의 협의 요청을 깡그리 무시하는 자세는 더 고답적이다.매향리 때도 마찬가지였다.작년 여름 군산의 미 공군기지에서는 침묵시위를 벌이던 신부와 여성 활동가 3명에게 미군 헌병이 수갑을 채워 끌고 갔다.

 한미간에 체결된 ‘SOFA(소파)’내용을 떠나 사람에 대한 대접이 이럴수는 없는 노릇이다.업신여기는 감정이 앞서 갈등을 더욱 악화 증폭시킨다.명령에 다라 수직적으로 움직이는 탓일까.반드시 그런 것 같지도 않다.한국에서 오랫동안 미군사고문단 참모장을 지낸 제임스 H?하우스만의 회고록 「한국대통령을 움직인 미군대위」(정일화 공저)를 보자.

 ‘한국 땅의 곳곳을 돌아본 첫 미군이었던 나는 그 방문지 사정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고 쓰고 싶었다.미국이 한국과 인연을 맺은 이상 이 나라의 사정을 소상히 알 필요가 있고,마침 나는 그 임무를 감당하는 입장에 있었기 때문에 내가 본 모든 것을 세밀히 보고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했다.8개 연대를 찾아가는 길목의 하나하나부터 그곳 병사들의 형편,주위 한국인들의 모양,나의 의견 등을 종합해 1개 연대 20∼30페이지 이상의 보고서를 작성했다’

 직책상 의무적으로 자신들의 편의를 위해 쓴 것이겠지만 그 정성이 일단 놀랍다.어느날 시골길을 가다가 저지른 실수를 후회하기도 한다.

 ‘나는 그 가마 옆으로 가서 천을 들춰 안을 들여다봤다.시집가는 색시가 기겁을 하고 울고 있었다.한없이 눈물을 흘렸다.나는 결혼해서 신랑을 따라가는 허니문 행렬을 무례하게 침입했던 것이다.지금도 사죄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어설픈 인정론을 펼 자리가 물론 아니다.아무에게나 이와같은 섬세한 접근을 바라지도 않는다.다만 희망한다.남의 나라에 가면 그 나라의 인간 정서에 대한 최소한의 공부를 거쳐 쓸데없이 우쭐하지 말아야 한다는 충고를 하고 싶다.

 미국의 ‘양심’으로 평가가 높은 메사추세츠공대 교수 노암 촘스키의 책 「미국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에는 또 이런 대목이 나온다.

 ‘그들(미국의 권력)이 원하는 것들중의 하나는 조용하고 수동적인 국민이다.따라서 그들은 골치 아프게 만들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은 수동적이고 조용하게 있지 않는 것이다.그렇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단지 질문하는 것만으로도 큰 효과를 낼 수 있다’

 한국에서도 그의 권고가 통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귀담아 들을만한 소리로 읽힌다.더구나 지금 세상이 어떤 세상인가.제일 참을 수 없는 것이 인간끼리의 모멸이다.〈최일남·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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