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을까지 형성됐던 괸못주변. 다양한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음에도 정비과정에서 생태계가 위협받고 있다.


◈ 도르못·괸못(조천읍 함덕리)

 비다!봄 가뭄에 찌들었던 대지가 모처럼 내린 비로 싱그럽게 다가온다.구수하고 향긋한 흙내음.나무들은 푸른 빛을 더하고 있다.

 이틀동안 내린 비는 최저 10.5(제주시)㎜에서 최고 192.5(성판악)㎜의 강우량을 기록했다.습지들도 다시 생기를 찾기 시작했다. 도르못·괸못을 찾아 가는 길이 무척 가볍게 느껴진다.

 도르못은 조천읍 함덕리 상동 농협 저온저장고 사잇길을 따라 150m가량 들어간 곳에 있다.해발 15m.수심이 깊어 붕어가 살고 왜가리·백로 등이 찾는 자연연못이다.

 비록 120㎡ 크기의 작은 연못이나 남쪽의 소나무숲과 어우러져 바쁜 세상살이로 어지러울 때도 마냥 넉넉하다.

 도르못 인근 보리밭에는 이제 막 수확을 앞둔 누런 보리들이 봄바람이 부는 대로 고개를 끄덕이며 흔들거리는 게 한폭의 수채화다.

 습지를 취재하며 덤으로 감상할수 있는 이 땅의 아름다운 풍경이다.

 제주환경운동연합 조사결과 이곳에는 뽕나무과의 환삼덩굴·꾸지뽕나무를 비롯 왕모시풀(쐐기풀과),역귀·소리쟁이(마디풀과),비름·쇠무릅(비름과),토끼풀(콩과),쑥·개망초(국화과),바랭이·쇠돌피·강아지풀(화본과),이삭사초(사초과) 등이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도르못에서 농로를 따라 곱은달(대흘2리)쪽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괸못이 자리잡고 있다.해발 35m.못 크기는 2500㎡가량 된다.

 이 일대는 흙의 심도가 낮고 모래층으로 덮여있는 해안가와 달리 지표면이 황토빛의 찰흙으로 덮여 있는데다 등고선이 주변 지형보다 낮아 상상외로 넓고 풍부한 수량의 못을 형성하고 있다.

 제주도 오름과 마을이름(오창명 지음·제주대 출판부)에 따르면 괸못은 흔히 고여못이라고도 한다.옛지도를 보면 고여못의 뜻을 담은 古餘池 또는 古與池·古礖池 등도 등장한다.

 이가운데 '괸'은 ‘(물이)괴다’라는 뜻이다. 古餘와 古與·古礖 등은 ‘고인’의 제주방언 ‘고여’또는 ‘고연’의 음가자 표기로 해석하고 있다.

 또 ㄱ못 주변에는 18C중반까지 마을이 형성됐고 이를 고여못 마을이라 불렀는데 이후 함덕리에 포함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원래 이 못은 3개의 못으로 돼 있었으나 98년께 농로확장으로 인해 공덕비가 자리잡은 작은 못은 매립됐다.

 특히 매립과정이 허술해 공덕비 받침돌에 금이 가고 기울어져 있다.물이 귀했던 시절,못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땅을 기꺼이 기증했던 지주들의 깊은 뜻마저 파묻힐 위기에 놓여 있다.

 이 일대는 마을과 비교적 멀리 떨어져 있는 탓인지 서식식물과 동물이 다양게 분포하고 있다.

 제주환경운동연합에 따르면 조류로는 백로·왜가리·흰뺨검둥오리가 있고 물에는 붕어·소금쟁이 등이 서식한다.

 특히 못 북쪽 찔레덤불에는 흰뺨검둥오리가 번식을 하는 것이 확인됐다.아마 여름이면 어미 흰빰검둥오리들은 새끼들을 물가로 데리고나와 살아가는 법을 익힐 것이다.

 주요 서식식물로는 버드나무(버드나무과),환삼덩굴(뽕나무과),역귀·소리쟁이·미꾸리낚시((마디풀과),쥐똥나무(풀무레나무과),댕댕이덩굴(세모래덩굴과),미나리(미나리과),가락지나물·자귀풀(콩과),줄사철나무·참회나무(노박덩굴과),까마귀머루(포도과),마름·애기마름(마름과),계요등(꼭두서니과),어린연꽃·좀어리연꽃(조름나물과),수련(수련과),붕어마름(붕어마름과),밭둑외풀(현삼과),쥐꼬리망초(쥐꼬리망초과),쑥·개망초·한련초(국화과),가래·애기가래(가래과),닭의장풀(닭의장풀과),강아지풀·개기장(화본과),개구리밥(개구리밥과),네가래(네가래과) 등이 있다.

 그러나 못을 정비하는 과정에서 바닥을 포크레인으로 긁어내고 있어 생태계를 위협하고 있다.

 앞서 거론한 바 이 일대는 등고선이 주변지역에 비해 낮아 수량이 많은데다 여름 장마때면 물이 넘쳐 농경지를 덮기 때문에 못 정비와 함께 바닥을 좀더 깊게 파는 작업을 병행하고있는 것 같다.

 습지는 말그대로 물이 있고 우리가 먹을 많은 생물이 살고 있다.수많은 생물의 종(種)다양성과 생명덩어리로 이뤄진 곳이다.

 여론에 떼밀려 연못 정비라는 미명하에 바닥을 긁어내고 포크레인을 동원해 못을 확장하는 것은 너무 근시안적 접근이다.

 한쪽에선 매립하고, 한쪽에선 다시 파고…. 구체적인 학술조사없이 이뤄지는 못 정비사업은 결국 상생과 순환의 원리를 깨고 만다.<취재=좌승훈·좌용철 기자·사진=조성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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