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차원의 사과를 계기로 4·3은 새로운 국면에 들어선 가운데, 그간 4·3문학의 창작과 비평 및 연구 성과 등이 상당히 축적된 만큼 4·3문학의 새 지평이 마련돼야 할 시점에 왔다. 이런 가운데 지난 1일 제주작가회의(회장 김광렬) 주최로 열인 4·3항쟁 57주년 기념 제14회 전국민족문학인 제주대회 문학심포지엄은 국가폭력 인정 이후, 남북통일과 단일 민족국가 차원의 4·3문학, 그리고 4·3문학속에서 여성·노인·어린이 등 억압계층에 대한 형상화의 필요성이 젊은 문학평론가들에 의해 제기돼 관심을 모았다.

다음은 주제발표문의 일부.

■‘화마의 섬에서 평화의 섬으로 가는 길’(고명철·광운대 교수)=임철우의 소설「백년여관」이나 이청준 소설「신화를 삼킨 섬」등이 4·3의 당사자인 제주인으로 하여금‘4·3문학의 이산’과 ‘4·3의 성찰’이란 문제를 새롭게 제기한다. 4·3이 제주만의 지엽적인 문제가 아님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4·3의 문제 해결은 제주인만의 배타적 감정에 의해 이뤄질 수 없음은 당연하다. 4·3은 한국현대사의 첨예한 쟁점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하여 4·3의 역사적 상처를 치유하는 일은 우리 모두가 함께 냉철한 이성과 뜨거운 가슴으로 해결해야 할 성질의 문제다. 우리는 평화의 섬을 추진하면서 제주의 통한의 기억으로부터 무엇이 진정한 평화인지, 어떻게 해야 평화로운 평화를 가꾸고 누릴 수 있는지를 제주의 역사로부터 값진 지혜를 얻어야 할 것이다. 바로 여기에 4·3문학이 새로운 과제가 부여된다. 허나 4·3문학의 존재 가치가 현재진행형이라고 할 때 4·3문학의 갱신역시 선언수준에 머물러선 안될 것이며, 4·3의 정신은‘지금, 이곳’에서 평화에서 상생을 위한 종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근대적 민족국가와 4·3소설’(홍기돈·중앙대 강사)=4·3소설에 나타나는 탐라공화국 건설의 열망은 근대적 민족국가 건설의 실패에서 빚어졌다. 다시 말해 전근대적 민족국가와 근대적 민족국가 사이의 공백을 이념(외세의 논리)이 가득 메우면서 비극이 발생했고, 비극에 대응하는 4·3소설의 상상력이 탐라공화국 건설로 나아갔다는 것이다.‘제주 방언’과‘서북 방언’의 대립 또한 마찬가지다. 단일한 민족의식을 이끌어낼 민족어(표준어)가 없었다는 말이 된다. 상상의 공동체에 불과한 민족(국가)을 해체하자는 학계의 소리가 높다. 제주도에서 영어 공용화를 실시하자는 주장은 그런 흐름과 궤를 함께 하면서 많은 논란을 낳기도 했다. 하지만, 상상의 공동체라고 하더라도 상상의 공동체를 만들었던 나름의 이유가 있게 마련이다. 억압민족이 아닌 피억압민족의 경우에는 그 이유를 곰곰이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4·3문학의 향방과 하위주체의 형상화 문제’(김동윤·제주대 강사)=4·3소설에서는 사회적 약자들까지 마구 고통으로 몰아넣었다는 점이 문제였다는 측면에서, 그 흉포성을 부각하려는 측면에서 여성·노인·어린이 등 하위주체(억압계층)들을 형상화하고 있다.

그리고 하위주체들이 4·3에서 수동적인 입장에 있었음을 작품화했다. 4·3소설에 등장한 그들은 적극적으로 행동하지도 않거니와 자신들의 희생과 고통에 대해서도 스스로는 잘 발언하지 않는 양상을 보였고, 주체적인 목소리로 4·3의 경험을 이야기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 4·3소설에서는 역사 서술에서 침묵당한 하위주체들의 목소리를 오롯이 복원해야 하며, 하위주체의 용의주도한 기억투쟁이 작품 속에서 본격적으로 실천돼야 한다.

4·3에서 하위주체들은 그저 그렇게 수난만 당했겠는가? 하위주체들의 역동적인 삶이 생활사의 복원과 함께 예술적으로 구현돼야 한다.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