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 평화중심지 자리

반세기 전 제주4·3을 단순한 비극적 사건에 머물도록 해선 된다. 4·3은 우리에게 ‘화해와 상생’이라는 메시지를 던졌다. 제주사람은 반인륜적 양민학살의 역사를 경험하면서 관념적·추상적 개념의 평화가 아니라 온 몸으로 평화를 갈구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화해와 상생의 4·3정신은 궁극적으로 제주의 미래 비전인 ‘평화의 섬’정신과 맞닿아 있다. 4·3이 단지 과거의 비극적 사건이 아닌 제주사람들의 평화와 자존심을 회복하는 역사적 근거가 돼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국가 공권력에 의한 인권유린행위로 결론 내려진 4·3에 대한 정부차원의 공식 사과는 반세기 넘게 이데올로기의 굴레 속에 신음해온 제주도민들을 신원(伸寃)하고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축으로 한 ‘4·3 해법’의 획기적인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4·3보고서 확정으로 4·3해결의 가장 중요한 진상조사는 어느 정도 매듭지어졌다. 이제는 다양한 명예회복과 기념사업이 추진돼야 할 때다.

그 후속사업으로 우선 평화공원 조성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후세들에게 평화와 인권의 학습장으로 물려주기 위해서는 4·3당시의 상황을 체험할 수 있는 체험공간 등 다양한 컨텐츠 확보가 시급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55년이나 걸려 4·3보고서가 채택되었듯 천년만년 계속될 4·3평화공원을 만드는데 급히 서두를 이유는 없다. 문제는 내용과 형식이 얼마나 조화를 이루느냐는 것이다.

현행 4·3특별법은 위령·기념사업의 주체를 언급하지 않고 사업을 위한 재정적 지원근거만 규정하고 있다. 향후 각종 위령사업이나 기념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 누가 주체인지 혼선이 생길 수 있는 대목이다. 때문에 이들 사업을 주도적으로 주최하고 조절할 수 있는 기구의 마련이 시급하다 할 것이다.

현재 도는 ‘제주4·3평화재단’설립에 따른 연구용역을 발주키로 하고, 과업지시서를 작성한 상태다. 물론 4·3관련단체와 유족들의 충분한 의견을 수렴한 뒤 용역을 발주키로 했다.

여기서 간과해서는 안될 문제가 하나 있다. 제주의 미래비전으로 떠오른 ‘평화의 섬’추진과 별개로 추진돼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제주도는 이미 ‘제주평화포럼’과 ‘민족평화축전’의 성공적 개최, 4·3의 올바른 해결을 통해 지난 1월27일 ‘세계 평화의 섬’지정을 이끌어내는 저력을 보여줬다.

20세기 냉전체제에서 제주사람들은 4·3이라는 ‘작은’ 저항을 시도하다 국가권력에 의한 압살을 뼈저리게 체험했다. 이런 경험을 갖고 있는 제주사람들은 인권과 평화에 대한 갈망을 마음 속 깊이 간직한 채 20세기의 절반을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4월1일 제주대학교 국제교류회관에서는 한·중·일 3개국 학자들이 머리를 맞대 ‘학살’의 과거사 위에 ‘평화’의 미래사를 싹 틔우려는 소중한 자리를 마련했다.

제주4·3연구소가 주최한 ‘동아시아 평화인권포럼’에서 3개국 학자들은 20세기를 피로 물들인 집단학살의 상처를 들추었다. 중국학자들은 난징을, 한국학자들은 제주와 광주를, 일본학자들은 히로시마와 오키나와를 불러냈다. 그리고는 거의 한 목소리로 ‘동아시아 평화벨트’구상을 이야기했다.

‘세계 평화의 섬’으로 지정된 제주가 그 한가운데 있음이다. 제주도가 최근 세계 평화의 섬 후속조치로 17대 사업을 정리했다. 제주가 동북아 평화의 수도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행·재정적 지원이 절실하다하겠다.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