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12월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드디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반세기 동안 4·3에 대한 침묵과 굴종을 강요받아야 했던 제주도민들에게는 한줄기 빛과도 같은 사건이었다. 그러나 정치적 타협의 산물이었던 4·3특별법이 잘못된 과거를 완전하게 청산하기 위한 법적·제도적 토대가 될 수 없는 한계를 지니고 있었던 것 역시 사실이다. 4·3진상조사보고서의 채택과 대통령의 공식사과 등 많은 성과에도 불구하고 4·3해결을 위한 여정은 멀기만 하다. 그래서 4·3운동은 또다시 시작인 셈이다.

1980년대 민주화운동을 거치면서 4·3도 그 진실이 하나씩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폭도들의 반란’쯤으로 인식되던 낡은 이데올로기의 허상도 점차 허물어져갔다.

드디어 1999년 12월 4·3특별법이 온 도민들의 박수와 환호를 받으며 역사에 전면에 등장했다. 하지만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이라는 법 제정 취지를 충분히 살릴 수 있는 법 조항들로 이뤄지지 못한 한계를 노출했다. 법 제정 5년이 지난 지금은 그 한계점을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노력이 절실한 시점이다. 이 모든 게 ‘4·3특별법 개정’의 문제로 요약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4·3관련단체들은 2005년 주요사업으로 일제히 4·3특별법 개정 문제를 들고 나왔다.

정치권에서도 제주출신 강창일 국회의원이 대표발의로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중 개정법률안’을 마련, 올해 개정을 추진할 계획이다. 법안과 관련해서는 4·3단체와 유족들이 참가한 가운데 공청회를 갖기도 했다.

강 의원이 준비중인 개정법률안은 크게 △4·3중앙위원회의 심의·의결사항에 집단학살지·암매장지 조사 및 유골 발굴 수습에 관한 사항 추가 △4·3추모일 지정 △4·3평화인권재단 설립기금 정부 출연 △희생자 및 유족의 생활안정을 위한 생활지원금 지급 △이미 결정된 의료·생활지원금 재심의 요청 근거마련 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는 희생자와 후유장애인, 유족들이 대부분 70∼80대 고령으로 접어들면서 이들에 대한 최소한의 정신적·물질적 보상이 뒤따라야 한다는 절박감과 향후 추가 진상규명 작업과 후세들에 대한 교육사업 등을 수행할 기구의 설립이 시급하다는 문제의식에서 비롯되고 있다.

이에 대해 4·3관련단체와 제주도의회 4·3특별위원회에서는 ‘진상규명’을 위한 법적 근거 마련이 오히려 더 시급하다는 주장을 제기하기도 한다.

현재의 특별법은 4·3보고서 채택으로 형식적으로 4·3의 진상규명이 완료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 사실상 제6조(4·3관련 자료의 수집 및 분석)와 제7조(진상조사보고서 작성) 조항이 사문화된 것이나 다름없다는 주장이다.

따라서 이들은 4·3평화인권재단이 설립돼 진상규명 작업을 보완하기까지 공백을 메우기 위해서라도 2년간 한시적으로 운영된 진상조사보고서 작성기획단의 활동시한을 연장하는 방안이 특별법 개정안에 반영돼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들은 향후 4·3특별법 개정에 △희생자 범위 확대 △4·3진상규명 지속근거 마련 △집단학살지 조사·발굴 정부차원 수행 △희생자 항시신고 체계 마련 △의료·생활지원금 지급 △희생자 명예회복을 위한 실질적 조치마련 등의 포함을 주문하고 있다.

안동우 도의회 4·3특별위원장은 “올해는 4·3의 완전한 진상규명과 희생자 명예회복이라는 양 날개가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관련단체와 유족뿐 아니라 온 도민의 역량을 결집해야 할 때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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