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윤호 변호사는 제주 법조계의 원로로 통한다. 고희를 훌쩍 넘긴 나이 때문만은 아니다. 판사의 법복을 벗고 제주에서 27년 넘게 변호사로 활동해왔던 것이다. 작년에는 뛰어온 발자취를 더듬어 ‘제주사법사’를 출간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그의 필생의 사업은 따로 있다.‘재단법인 강윤호 박물관’을 운영하는 것이다. 도민들에게 고서화와 희귀한 골동품들을 접할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서이다.
그는 이를 위해 지금까지 사재를 털어 1만점의 문화민속자료들을 모아왔다. 그중에는 국가보물급 문화재도 많다.

이렇게 해서 그는 작년 5월‘재단법인 강윤호 박물관’설립허가를 받게됐다. 여기에는 오라2동의 부지 6300여평과 건립자금등이 출연됐다. 이에 따라 제주에서도 이제 역사적인 ‘재단법인 박물관’의 탄생을 바라볼수 있게된 것이다.

그런 가운데 며칠전 강변호사로부터 한통의 우편물이 배달됐다. 뜯어보나 마나 박물관 개관을 알리는 안내장이겠거니 하며 뚜껑을 열었다. 그러나 이게 어찌된 일인가. 그토록 고대하던 박물관 개관 소식은 어디에도 없었다.‘재단법인 강윤호 박물관 해산과 관련하여’란 제목만 크게 다가왔다.

그 사연은 참으로 기가 막혔다. 제주도와 제주시의 ‘돼지우리식 행정’ 때문에 뜻도 이루지 못한채 몸져눕게됐다는 요지였다. 재단법인 설립과정에서 제주 공직자들로부터 받았던 냉대와 푸대접 등으로 한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그로인한 엄청난 정신적 스트레스로 병까지 얻게됐다는 것이다.

“서울 반포아파트를 재단법인에 출연할 때 취득세를 내지않고 이전등기를 했는데도 제주시 서해아파트와 연동 토지등을 재단법인으로 이전할 때는 제주시당국이 취득세를 내야 한다고 고집을 부리는 것이었다. 그래서 장시간에 걸쳐 지방세법의 법조문을 설명하고 항의 끝에 취득세를 면세받게 됐다...(중략)...박물관의 특성과 공익성, 필요성, 수집동기등을 말씀드리기 위해 제주도지사와 제주시장의 면담을 요청했으나 끝내 제주시장은 약속까지 해놓고 만나주지 않았다.”

제주지역에서 민간사업을 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를 잘 웅변해주고 있는 것이다. 이러고도 자치단체들이 변화와 혁신을 얘기하고 민자유치를 입에 담을수 있는가.

결국 그는 도와 제주시로부터 한푼의 예산도 지원을 받지못했다. 그는 “박물관진흥법에도 지방자치단체가 사립박물관등에 설립비와 운영비를 보조해줄 수 있다는 규정이 있다는 점까지 여러차례 설명했지만 그때마다 행정당국은 푸대접했다”며 “이것은 도민의 문화예술 향유권을 무시한 처사”라고 비난했다.

그래서 그는 끝내 박물관 건립의 꿈을 접을수밖에 없었다. “자원하여 문화봉사의 길로 뛰어들었다가 이렇게 냉대를 당하는데 저의 자손들에게까지 그 수모를 물려줄수는 없다.”그는 제주사회에서 문화봉사사업을 한다는 것은 재벌이나 미친 사람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엄두도 못낼 일이라는 것을 이제야 절감했다고 덧붙였다.

모두 A4용지 11쪽으로 된 그의 한탄과 절규는 이렇게 끝을 맺고 있다. “제주도지사와 제주시장은 도민의 진정한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문화예술의 발전에도 관심을 가지고 행정을 펴주시기 바랍니다.”소 귀에 경 읽기가 아니기를 바란다.

<진성범.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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