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항렬할머니가 100세를 맞이했던 지난 97년 귀덕1리 성로동의 자택에서 레지스 스미트 성이시돌양로원장고 간호사의 방문을 받고 있다.


 3세기를 살아온 김항렬(103·제주시 도남동)·김항진할머니(100·한림읍 귀덕1리)와 김항규할아버지(97·애월읍 어음1리) 3남매가 어버이날을 맞았다.

 장한 어버이로서 국가나 자치단체로부터 상을 받지는 못했지만 이들 3남매는 전쟁등 숱한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자식들을 꿋꿋하게 키워온 우리시대의 참 어버이다. 특히 이들 3남매의 나이가 올해로 꼭 300살이어서 더욱 눈길을 끈다.

 애월읍 어음1리에서 태어나 4·3과 6·25전쟁, 그리고 전쟁보다 더 처참한 보릿고개를 넘었던 3남매. 이들은 난리통속에서도 슬하의 자녀 11남2녀의 어린 생명들이 70살이 넘을때까지 가슴에 꼭 품어왔다.

 살아만 있으면 좋은 날이 오는 것일까. 3남매의 자녀중에는 공무원이 많다. 항렬옹의 2남2녀중에는 두 아들이, 항진옹의 4형제는 모두가, 항규옹의 5형제 가운데 2형제등 모두 8명이 공무원으로 퇴직했거나 현직에 있다.

 지난 일을 다소 기억할 수 있는 항규옹은 고난했던 부모의 삶을 한꼭지 털어놓는다.

 그는 “재산이 하나도 없어 지게로 품일을 하면서 끼니를 이어왔다. 배가 고파 목구멍까지 피가 올라왔지만 그것은 자식들을 위한 부모의 도리였다”고 오히려 반문한다.

 항규옹은 슬하의 5형제가 4·3에 이어 6·25전쟁에 참전하는등 불확실한 시대속에서도 무사히 고향에 돌아온 것을 자신의 기쁨처럼 가슴속에 지닌채 살아가고 있다.

 큰누님인 항렬할머니 역시 항규옹 못지 않게 자녀들을 훌륭히 키워왔다. 특히 항렬할머니의 큰며느리에 대한 각별한 사랑은 지금도 귀덕1리 주민들에게 귀감을 사고 있다.

 3년전 큰아들이 사망한후 81세의 며느리와 함께 거주했던 항렬할머니는 매번 식사를 갖고오던 며느리가 어느날 아침 갑자기 보이지 않자 당시 100세의 노구에도 불구하고 며느리가 기거하는 안채까지 직접 기어가서 죽음을 확인했다. 항렬할머니는 시멘트바닥에 엎드린채 기어서 대문밖으로 나와 며느리의 죽음을 알려 며느리의 주검이 부패되지 않고 무사히 장례를 치르도록 했다.

 3남매의 가정은 부모의 자식에 대한 사랑뿐만이 아니다. 마을주민들은 3남매 할머니·할아버지가 장수를 할수 있었던 것은 자식들이 부모에 대한 지극한 효성때문이라고 말을 아끼지 않는다.<박훈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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