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선 자치시대 이후 주민들의 목소리가 한층 높아지고 있다. 특히 참여정부 들어서는 시민단체의 입김이 더욱 막강해지고 있다. 자치단체가 제 길을 가다가도 그들이 제동을 걸면 주춤거릴 정도이다. 주민위에 군림하던 권위주의가 사라지고 있다는 점에서 부정적으로만 볼수가 없다.

그러나 이에 편승한 소수집단의 이기주의는 경계돼야 한다. 합리적 해결보다는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하는데 목을 매는 모습은 볼썽 사납다. 민선자치의 취지와 정신을 크게 훼손하기 때문이다.

지금 도민사회에는 각종 대책위가 범람하고 있다. 이름도 비슷한 범대위, 비대위, 반대위 등 하도 많아 혼란스럴 정도이다. 더 큰 문제는 같은 목적과 대의명분을 놓고서도 공동체간에 서로 이견과 갈등을 빚고 있다는 점이다.

이같이 두세개로 갈라선 ‘대위’들이 과연 얼마나 제몫을 할수 있을 것인가. 하나로 일원화돼도 견해와 시각차로 조율이 어려운 판인데 이렇게 사분오열해서는 주민들의 역량을 결집하기가 어렵다.

지난달초 화순항 해군기지 건설에 따른 안덕면 비상대책위원회가 구성되자 도민들은 마음속으로 박수를 보냈다. 찬성과 반대란 이분법적 논리를 떠나 슬기롭게 합리적인 결론을 도출해내려는 의지가 엿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로부터 얼마뒤 안덕면 화순리와 사계리가 반대 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 그러더니 엊그제는 안덕면비대위가 논쟁 끝에 반대위로 개명되면서 ‘3개월간 설명회와 여론수렴 등을 통해 입장을 정하자’는 당초의 결정은 물거품 돼버렸다.

그런가하면 지난달하순에는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와 쇼핑아울렛철회쟁취범상인비상대책위원회가 평가위원회 구성에 전격 합의했다. 이에따라 비대위는 7일간 진행해온 천막농성을 철회하는 한편 개발센터 본사 이전에 맞춰 갖기로 했던 집회도 취소했다.

그러나 그 다음날 지역경제살리기범도민대책위원회는 성명을 통해 개발센터와 비대위간의 합의사항을 인정할수 없다며 천막농성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참으로 협상당사자들은 어느 장단에 맞춰 춤을 춰야할지 난감한 노릇이 아닐수 없다. 문제해결도 더욱 복잡하고 어려워지게됨은 물론이다.

자치시대에 주민들이 제목소리를 내는 것을 나무랄 수만은 없다. 주민의사의 정책 반영이란 측면에서 되레 권장돼야할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정당성이 확보돼야 한다. 자신의 이익만을 위한 우격다짐이거나 막무가내 식이어서는 곤란하다.

최근 제주사회가 이런 문제로 시끄러운 데는 자치단체장의 책임도 없지 않다. 눈앞의 표만 의식한채 뭣하나 속시원히 결정하지 못하고 우물쭈물 눈치만 보기 때문이다. 무소신하고 무원칙한 우유부단함이 논쟁을 더 키우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토론문화도 문제다. 자기 주장만 펴놓고 입맛에 맞지않은 말은 귀담아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마을총회 같은데서도 목소리 큰 사람이 한마디 하면 맹목적으로 따라갈 때가 많다. 그것이 옳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합리적으로 따져보는 여유조차 없다.

주민들의 의사결정은 풀뿌리 민주주의 시대에 걸맞게 민주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토론을 통한 절충이 어려우면 다수결로 합의점을 도출해야 한다. 또 그렇게 해서 의결된 정책은 싫어도 따라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그토록 염원하는 민주주의의 기본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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