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지냐 사수냐. 지금 제주에는 전운이 감돌고 있다. 역사적인 주민투표가 닷새 앞으로 다가오면서 기초단체의 존폐를 둘러싼 도지사와 시장 군수들의 사활건 전략이 대리전 양상으로 비화되고 있는 것이다.

반기의 선봉에는 김영훈 제주시장과 강상주 서귀포시장이 버티고 있다. 이들은 가는 곳마다 결사항전(?)의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지난주 김 시장은 제주시의회 정례회에서 “현직 시장의 눈앞에서 지방자치단체로서의 제주시청 간판이 내려지려 하는데 가만히 앉아 직무유기를 해야 하느냐”고 사뭇 비장한 각오를 내비쳤다. 그러면서“조국을 팔아먹은 이완용 같은 사람은 될 수가 없다”고 말했다.

그런가하면 강 시장도 서귀포시의회 정례회에서 “제주도를 기초자치권 폐지의 실험장소로 만들어 분란을 야기시키고 있다”며 “제주역사에 죄인이 되는 심정”이라고 덧붙였다. 도지사와의 극명한 입장차가 어느새 갈등을 넘어 일촉즉발의 극한상황으로 치닫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들이다.

이에따라 공무원들도 지휘관을 중심으로 두패로 갈라서 있다. 일선공무원들은 시장 군수들의 뜻을 쫓아 점진안을 선호하는 분위기가 대세이다. 반면 도 공무원들은 도지사의 눈치를 봐가며 혁신안을 지지하는 기류이다. 그래서 이들의 보이지 않는 신경전은 갈수록 뜨겁고 치열해지고 있다. 언제 이렇게 도와 시군 공무원들이 서슬 퍼렇게 대치했던 적이 또 있었던가.

도민들의 분열상도 위험수위에 육박하고 있다. 한 단체에서 혁신안을 들고 나오면 곧바로 다른 단체에서 점진안으로 받아치는 형국이다. 매일마다 번득이는 찬반논쟁이 온섬을 떠들썩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지역별로도 지지하는 성향이 서로 달라 혼돈의 끝이 보이질 않는다.

이렇게 제주사회는 지금 계층·지역·단체간 극심한 대립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런 살벌한 대치정국 속에서 과연 주민투표가 개표로까지 무난히 이어질 것인지 의문이다. 또한 투표가 끝나고서도 첨예하게 갈라선 양측의 대립과 반목을 어떻게 극복하고 봉합할 것인지 걱정이다.

이에 대한 해법으로는 오로지 투표율 밖에 없어 보인다. 투표율은 주민자치역량을 가늠하는 잣대이자 시금석이다. 투표율이 떨어지면 도민합의도 이끌어낼수 없을 뿐만아니라 또다른 혼란을 야기할 우려가 높다. 따라서 지금은 혁신안이냐 점진안이냐, 그것이 문제가 아니다. 바로 투표율이 문제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때문에 도와 시군은 우선적으로 투표율 제고에 매진해야 한다. 서로 으르렁 거리며 싸울 때가 아니다. 혁신안도 점진안도 투표율이 최소한 34%가 넘어야 결정되는 것이다.

만에 하나라도 시군 공무원들이 투표율 미달이란 어부지리로 현행안을 붙잡아 보겠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무엇보다 도민공감대나 정당성을 확보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혁신안을 꺾더라도 투표를 통해 당당하게 꺾어야 한다.

도민들의 투표권 행사는 지극히 당연한 권리이자 의무이다. 따라서 이제 우리 손으로 제주의 미래와 운명을 결정해야 한다. 선수들도 마땅히 페어플레이를 해야되겠지만 레프리로 나서는 도민들이 엄정한 심판을 내려야 한다. 그래야 투표후의 후유증과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는 것이다. 정작 투표는 포기했다가 정책이 결정되고 나서야 불만을 토해봤자 부질없는 짓이다. 투표로서 할말을 다해야 한다.
<진성범·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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