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으로 보기엔 영락없는 창고였다. 이 창고의 철제대문을 밀치고 들어서는 순간 사람들은 예술의 향기에 취하게 된다. 예술의 도시 파리의 하늘 밑에는 '소나무'라는 한국인 화가들이 만든 모임이 있다.그들의 작업장은 프랑스 최대의 아틀리에다. 전시장 '아스날'까지 겸하고 있는 그 거대한 내부는 전세계 작가들의 예술혼으로 가득차 있다.

91년말,파리로 날아간 한국의 작가들은 집얻기 보다 열배나 더 힘들다는 아틀리에 때문에 고생 고생하다가 파리 근교에 에펠이 지었다는 운동장 만한 국방부 병기창고를 빌렸다.당시 프랑스 국방부는 이곳의 활용을 놓고 공개모집을 벌인다.프랑스 제일의 슈퍼마켓체인,방송국 등도 거대한 사업계획과 금액을 제시하며 나섰다.허나 특이하게도 프랑스 정부가 선택한 것은 화가들이었다.일년에 단 90만원 정도의 임대료만 받고 가난한 소나무모임에 세를 내 주었다.지금 이 곳은 전세계 작가들의 50여개 칸으로 나눈 작업장이 됐다. 연중 전시회를 하면서 화제를 모으고 있다. 프랑스 정부의 예술적 감각을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물론 문화가 최대의 경제 고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는 나라,그러한 분위기가 몸에 밴 담당관료들의 의식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으리. 

그런 건물을 보면서 부끄러웠다.우리 공무원들이었으면 어땠을까.전세계 박물관 순위 50위인 나라.뒤늦게 각 지역에서 공공미술관 만들기에 팔을 걷어 붙였다.지역마다 문화인프라 구축전이 벌어지고 있다.이제 '문화가 밥먹여주나'란 말은 거짓이다.왜그런가.사람들의 눈은 자연에만 있지 않다.그냥 먹고 마시고 즐긴다는 것은 어디서든 할 수있다.문화와 역사체험은 우리의 눈을 오래 그곳에 머무르게 한다.

미술관은 지역문화의 중심체다.사람들의 피로한 눈을 쉬게하고 스쳐갈 것을 잠깐 더 머물게 만든다.현재 문광부에 등록된 미술관은 모두 45곳.멋진 공공미술관 하나 없는 지역에 불행하게도 제주지역도 포함된다.환경이 망가진다고 환경단체가 나섰다.정치가 엉망이라고 낙선 낙천운동을 위해 시민단체가 나섰다.그런데도 문화예술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왜 이런 미술관 문화 운동에 좀더 적극적이지 못할까 생각했었다.

늦게나마 미술인들이 주축이돼 도립미술관 건립추진위를 발주시켰다.공감한 제주도가 적극적으로 도립미술관 건립에 관심을 쏟고 있다.도는 지난달 100억규모로 부지 5000평에 건물 2000평 규모의 미술관을 짓기위해 문광부에 신청을 했다.다행스런 일이다.정말 제주도에 어울리는 멋진 미술관 하나 생길까. 물론 쉽지 않은 시작일 뿐이다.성공적인 정책사업으로 가려면 충분한 준비작업을 거쳐야 한다.시작하면 조급하게 끝내고 문제가 생겨야 땅을 치는 우리와 달리 외국의 경우 평균 8년 짧아야 4년 걸려 완성한다는 미술관이다.

때문에 과연 마스터플랜은 있는 것인지,미술관의 3요소라는 건물,전문인력,소프트웨어 등은 준비하고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잘못된 설계로 엄청난 비용만 부담하고 미술관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대구 시립미술관의 경우 민·관이 원활한 소통 속에 체계적으로 진행되고 있어 모범적 사례로 꼽히고 있다.500억원을 들여 2002년말 완공예정이다.초현대식 대규모 미술관으로 2만평의 터에 연면적 5천평규모로 설립된다.철저한 사전준비작업으로 98년 시립미술관 건립자문위·건립기획단과 추진위 구성, 시립미술관에 대한 기초자료 조사 및 건립계획안 수립등 탁상회의가 아닌 전문가 실무경험을 토대로 미술관 건립에 열을 쏟고 있다.

작년부터 집중 논의를 거친 전북도도 2003년을 목표로 6000평부지에 200억원을 들여 세운다.부지선정을 놓고도 상당한 진통을 겪고 있다한다.그만큼 제대로 짓지 않으면 안 지음만 못하다는 것을 새기고 있기 때문이다.

미술관은 지역 한계를 벗어나 예술적 감각으로 접근해 들어가야한다.민·관이 조화를 이뤄 지금부터라도 제대로된 제주도립미술관 하나 꿈꿀 일이다.빈틈없고 차분한 작업으로 정말 후대가 자랑스러워할 명작을 만든다는 정신으로 시작할 일이다.<편집부국장 대우 겸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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