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우철 제주도의장이 지난주 본회의에서 모처럼 따끔한 충고를 했다. 김태환 지사를 겨냥해서다.“권한쟁의심판 문제로 도민갈등이 심화되는 마당에 도가 소송수행상의 절차까지 무시해서야 되겠느냐”는 것이었다.

그의 이같은 쓴소리는 신문과 방송에 크게 보도됐다. 권한쟁의심판의 중요성 때문인가, 아니면 양의장이 김지사를 질책한게 극히 이례적이어서인가.

사실 양의장의 지적대로 도가 헌법재판소에 답변서를 제출하지 않은 것은 보통 문제가 아니다. 결국 시장·군수의 주장을 인정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패배를 자인하는 셈이다.권한쟁의 심판에 대한 도의 대응의지를 의심하지 않을수 없는 대목이다.

그런데도 도의회가 여태껏 그런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직무유기의 전형이다. 도의회가 집행부에 대한 감시를 얼마나 소홀히 하길래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한심하기 짝이 없다.

행정계층개편에 따른 주민투표만해도 그렇다. 도의회는 지난 7월 1일 도민들의 찬반 논란속에 도의 주민투표 실시요구에 따른 의견서를 원안대로 가결해줬다. 주민투표에 부정적이던 종전의 입장을 스스로 뒤엎은 것이다.

뿐만아니라 7월 6일에는 도의장이 도지사와 공동명의로 ‘주민투표 발의에 즈음하여 도민여러분께 드리는 말씀’을 광고로 내보냈다. 집행부를 견제하고 감시해야할 도의회가 들러리를 서주며‘총대’를 매준 것이다. 그렇게 해놓고도 도의회가 과연 집행부의 잘잘못을 제대로 추궁할 있을지 의문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도의장의 가벼운 처신도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도의장은 무슨 협약식이나 업무조인식 때마다 김지사 옆을 지킬 때가 많은데 도대체 그가 거기서 하는 일은 무엇인가. 지사는 그래도 상대 기관장과 협약서를 주고 받으며 악수라도 하지만 도의장은 웃으면서 박수를 치는게 고작이다. “도의장은 도지사의 들러리냐”는 비아냥이 쏟아지는 이유이다.

도의장이 도민을 대표해서 행사장에 도지사와 나란히 참석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하지만 굳이 참석하지 않아도 될 자리에 도지사 옆에서 박수만 치는 도의장의 모습은 보기에도 민망하다.

도의원들도 마찬가지이다. 서명식같은 ‘사진찍는 행사’에도 얼굴을 내미는 경우가 허다하다. 특별히 ‘한마디’를 하는 것도 아니고, 도의 장단에 맞춰 움직여주는 것 뿐이다. 그래도 그들은 도민들에게 눈도장 찍는 기회를 갖게된 것만도 영광으로 여기는 눈치이다.

김도정 출범이후 도와 도의회는 사이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김지사가 소속한 한나라당이 사실상 도의회를 장악해서인지 모른다. 그러다보니 도의회가 견제와 감시라는 본연의 역할과 책무를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지방자치단체는 수레의 두바퀴처럼, 집행기관과 의회를 두축으로 하여 운영된다. 나름대로 역할과 권능이 분담돼 있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도의회의 본령은 감시와 견제, 그리고 중재와 조정에 있다.

그러나 지금 도의회는 이를 화끈히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김지사를 괴롭히는 강상주 서귀포시장에게는 직격탄을 날리면서도 정작 견제대상인 눈앞의 김도정에 대해서는 때리는 시늉만 하고 있다. 또한 전임도정의 실책은 끝까지 물고 늘어지면서도 김도정 앞에서는 여전히 약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초록은 동색이라 했던가.<진성범 /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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