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약을 복용하고 싶어도 가릴 음식이 많아 불편해서 안되겠다는 사람들이 있다. 흔히 닭고기, 돼지고기, 술, 밀가루음식이 그렇고 맵고 짠 자극성 음식, 커피, 담배 같은 기호식품 심지어 무나 녹두도 입에 오르내린다. 기본적으로 이런 걸 다 가려야 되는 줄 아는 사람이 아직 있는 듯하다. 그러나 이건 오해다. 한약 때문에 가리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의 소화능력과 병의 성질 때문에 가리는 것이다.

닭고기, 돼지고기는 우리가 즐겨 먹는 음식이지 괴상하고 꺼리는 음식도 아니다. 밥도 못 삭여 죽 먹을 사람에게야 이런 육류를 당분간 금하는 것은 말할 여지도 없겠으나 영양이 부족한 사람으로서 위장이 괜찮을 때는 가릴 이유가 전혀 없다. 또한 살찌기 싫은 사람은 알아서 많이 먹지 않을 것이니 이것도 각자가 할 일이다. 술은 흥을 돋구는 성질로 봐서도 알다시피 소량을 마시면 약이 전신에 퍼지는 것을 도와주기도 한다. 다만 폭주를 하거나 다음날 곤할 정도로는 마시지 말자는 것이다. 밀가루 음식이라는 것도 다분히 기호에 관계되므로 좋아하기도 하고 소화에도 지장 없을 때는 구태여 가리지 않는다. 빵 먹고 속이 편치 않은 사람이야 말 안 해도 안 먹을 테니까.

무, 녹두 등도 아주 순한 식품이지 그 자체가 약과 상극되는 무슨 성질이 있어서 머리가 센다든지 약 효력이 없어진다든지 하는 게 아니다. 이전에 생게와 참기름을 같이 먹으면 죽는다느니 하는 등의 일본미신이 유행하던 때를 연상해보자.

그러므로 음식을 가린다는 것도 고혈압이나 당뇨병, 신부전 환자에게 식이요법을 하듯이 그런 차원에서 말하는 일종의 식이요법이다. 수십년 전 우리나라에 장티푸스가 탈을 많이 내던 시절 두어달을 고생하여 겨우 나을 무렵인데 하도 배가 고파 텃밭의 무를 뽑아서 씹어 먹은 게 위장을 딱 정지시켜버려 죽은 사례가 있다. 같은 경우에 미음 먹어야 될 사람이 비빔밥을 먹고 역시 죽은 예도 있다. 위장 기운을 봐가며 식사해야 된다는 걸 실감나게 하는 이야기다. 그러므로 식사 습관이나 소화에 문제가 없고 그 병에 음식이 직접 상관이 없는 사람은 한약 복용 중에 가릴 음식도 없는 게 원칙이다.<황학수·한의사·제민일보한방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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