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에 닿지 못했으나 우린 그곳에 있었다.우리는 몰라도 너무도 몰랐던 것일까.준비하지 않았으나 북은 남녘을 남은 북녘을 향해 참았던 눈물을 흘렸다.너무 감동이 진하면 소름이 돋는 걸까. 평양땅의 붉은 카펫 위로 갈라진 땅,갈라진 마음을 잇는 세기의 악수가 울렸고, 이산가족의 상봉등 합의에 서명을 하는 순간이 울렸다. 형같고 아우같이 선 두 지도자의 보기좋은 건배 모습에도 가슴이 메었다.

 남쪽에서 온 손님들이 떠날 때 세기의 배웅장면은 어떤가.그렇게까지하랴. 차마 예상을 뛰어넘는 북쪽 지도자의 포옹이었다.평양 연도에서 열광하던 얼굴 얼굴들.할머니도 누이도 형도 아우도...모두 있었다. 전세계의 시선이 이 땅의 역사에 고정됐고, 온 겨레가 그렇게 사흘동안 감동하는 밤을 함께 보내야 했다.비록 지나친 감성을 억제해야 하고 경계해야 한다는 우리의 모순된 감정을 탓하면서도 우리는 감동앞에 지고 말았다.

 강물처럼 푸르디 푸른 남과 북의 유월 하늘아래 2000년 대역사가 쏟아지고 있었다.그 유월의 하늘아래 왜 가버린 순정한 통일시인 늦봄이 떠오르는 걸까.민족통일에 대한 자주적이며 민주적인 원칙을 주장하던 늦봄 문익환시인.늘 얼음같은 냉전의 논리를 깨고 통일 평화의 정신을 실천과 예술로 섬광처럼 쏟아 부었던 순수 예술주의자 문목사가 생각난다.

 <제주도를 생각한다/1948년 4월3일을 생각한다.그 때 당신들은 이미 알고 있었군요/반 쪼가리는 병신이라는 걸/아니 어쩜 그건 죽음이라는 걸/어찌 그리 환히 알고 있었나요.../너나 없이 남쪽만이라도 우리나라 세운다며/축제기분에 들떠 있을 때/제주도는 알고 있었군요...>  

 그가 옥에서 나온 9년전 제민일보 창간 한돌에 써준 시「제주도를 생각한다」는 분단체제의 화석같은 냉전구도속에 폭발한 이 섬땅의 비극사 4·3을 가운데 놓고 있었다. 시인은 말했다.

 “이 겨레의 얼굴에서 웃음을 앗아가는 검은 손이 보이면, 몸이 와들와들 떨리더군요.겨레의 모든 불행인 휴전선이 사람의 손이 닿지 않으니까 온갖 푸성귀 나무 꽃 짐승 새 물고기들의 낙원이 되었다는 것이 아닙니까?”

 멀고 멀지라도 통일로 가는 길, 우리는 서로의 투명한 모습을 보아야 한다. 혹여 서로가 서로에게 형제가 되어 만날 때 상처를 주지 않아야 한다.인간과 인간의 만남은 곧 내가 그대가 되어보고 그대가 나의 입장이 되어 보는 것이 아닌가.우리는 서로의 투명한 모습을 보아야 한다.

 전쟁으로 인한 대결과 인간의 존엄성에 그어진 상처.그로인해 마음의 병이 얼마나 깊었던가.유월의 후유증에서 사월의 후유증에서 벗어나 서로가 서로에게 통증이 되어있는 것들을 어떻게 치유하며 평화로 갈 수 있을까.

 감동은 모든 치유의 시작이다.이제는 정말 냉정한 이성으로 가야할 때가 된 모양이다.갑자기 우리 사회에 불기 시작한 북한신드롬은 때문에 북한에 대한 공부가 너무 안되었기 때문 아닌가. 이제 통일의 길에서 실천의 과제가 기다리고 있다.아이부터 어른까지 북에 대한 공부도 철저히 해야 할 때가 되었다.벌써부터 각 분야의 교류에 대한 들뜬 기대도 나오고 있다.

 6월 13일의 감동의 순간 순간이 얼어붙은 민족의 심장을 녹였다면,이제 그 순수한 감동이 허망하지 않게 이성적 접근을 해야 할 때다.과연 우리가 어떻게 평양을 이해할까 혼란스럽더라도 우리는 이제 마음을 정돈해야한다.

 89년 굳이 꿈에서라도 갈테야 하며 공언하며 갔던 평양길의 늦봄,돌아와 옥에 갇힌 그 시인.늦봄 문익환.1시간만에 꿈같이 하늘길로 튼 평양행의 이 장면을 본다면.그가 그렇게 꿈꾸던 ‘꿈을 비는 마음’한조각 안고.정말 평화와 행복을 노래하던 그의 꿈이 이제 꿈은 아니지 않겠는가.혹여 한라산자락 앞에서 평화의 정상회담을 할지 어찌 알겠는가.

 <...그도 아니면/이런 꿈은 어떻겠소?그무덤 앞에서 섬이 솟아/서해바다로 서해바다로 흐르면서/휴전선 원시림이/압록강 두만강을 넘어 만주로 펼쳐지고/한려수도를 건너뛰어 제주도까지 뻗는 꿈/그리고 우리 모두/짐승이 되어 산과 들을 뛰노는 꿈...어처구니 없는 꿈 말이외다><편집부국장 대우 겸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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