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 방송국이 처음 개국된 것은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9월10일이다. KBS제주방송국은 시설과 인력이 빈약하고 출력도 50W로 소규모였으나, 전파 매체의 불모지인 제주에 방송 문화의 첫 씨앗을 뿌렸다.

한국전쟁 당시 정부는 전국방송이 모두 적의 수중으로 들어갈 것에 대비, 제주에 최후의 방송보루를 건설할 계획을 세워놓고 있었다.

이에 따라 50년 8월14일 중앙방송국이 전란을 피해 대구에서 방송을 하고 있던 중 방송요원들이 제주방송국 설립을 위해 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제주에 내려왔다.

그로부터 25일만인 9월10일 이들 방송요원들은 드디어 제주땅에 첫 전파를 쏘아올리는데 성공했다. 제주시 이도2동 1632번지 60평 규모의 제주무선국 수신소 건물에 간이 스튜디오를 만들고, 호출부호 HLKS, 주파수 1080KHZ로 개국된 KBS제주방송국은 전국에서 11번째의 지방방송국으로 탄생된 것이다.

개국 당시 초대 국장 이원영씨를 비롯해 방송과에 13명, 업무과에 5명의 직원이 근무했으며, 제주도 일원을 서비스 지역으로 하루에 HLKA 중계 12시간, 로컬프로그램 1시간의 방송을 실시했다.

개국 초기 방송시설은 간이 스튜디오를 만들어 송수신의 기본장비만을 갖춰 녹음기 한 대 없이 방송을 시작했다.

출력도 50W로 출발해 지난 51년 3월10일 500W로 증강했으나 한라산이 가로막혀 산남 지역이나 서부 지역에서는 라디오 방송을 청취할 수 없었다.

또 개국 초에는 전황을 알리고 전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군의 사기를 높이고 민심을 안정시키기 위한 음악과 군가, 정부와 군 당국에서 발표하는 공지사항, 임시뉴스 등을 방송했다.

로컬방송은 피난민 등을 위한 공지사항과 지방소식을 전했다.

ㅍ당시 제주방송국의 탄생은 제주 지역의 새로운 방송문화의 태동을 예고하면서 방송문화창달에 크게 기여했다.

제주방송국은 개국 2년만에 비극적인 사건을 겪게 됐다. 지난 52년 9월15일 새벽 1시30분에 무장공비 40여명이 제주방송국을 습격해 방송과장 김두규, 견습직원 채종식, 사환 김석규 등이 피살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4·3사건과 한국전쟁으로 긴장과 불안에 떨고 있던 도민들에게 또다른 충격을 안겨 줬다.

이들 좌익 무장대원들은 사건 발생 이틀전에 제주방송국 개국 2주년 기념 특집좌담으로 방송한 한라산 무장대의 잔악상 폭로 프로그램에 불만을 갖고 습격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사건 발생 당시 김 과장 등은 무장대원들이 미리 갖고 온 밧줄로 결박당한 채 북제주군 조천읍 선흘곶 야산에 끌려가 살해됐다. 다행히 이날 같이 숙직했던 나머지 직원들은 책상 밑 등에 숨어 피해를 면했다.

한편 신고를 받고 긴급출동한 경찰은 피랍현장을 중심으로 경비를 강화하면서 피랍자들의 수색작업을 전개했다.

그로부터 6일만에 귀순한 무장대의 정보 제공으로 야산에서 이들의 주검이 발견됐고, 9월24일 제주방송국장으로 장례가 엄수됐다.

김 과장은 부인과 2남2녀를 둔 가장이었으며, 채종식씨는 10대 소년으로 채용 6개월만에, 김석규는 2개월만에 참변을 당했다.

현재 KBS제주방송총국 청사 내에는 당시 순직한 방송인들을 추모하기 위해 ‘KBS 제주 9·15 순직 방송인 추모비’가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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