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의 중앙절충 능력이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물론 어제 오늘의 지적이 아니다. 그런데도 도는 들은체도 하지 않고 ‘민심관리’에만 열중이다. 그러는 동안 거창한 특별자치도 기본계획은 정부로부터 난도질을 당하고 있다.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이미 보도를 통해 알고 있는 바와 같이 특별자치도 기본계획은 형체를 알아볼수 없을 정도로 흉하게 일그러졌다. 정부부처마다 인정 사정없이 칼질을 해댔기 때문이다. 지난주 국무총리 조정실이 주재한 차관급 회의에서는 기본계획안 14개분야 340개의 지방이양 제안 가운데 38%에 불과한 131건만이 우선 추진대상으로 채택됐다. 그간 큰소리 뻥뻥 쳐온 도의 꼴이 우습게 돼버렸다.

이를테면 도가 당사자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밀어부쳤던 ‘한국공항·관광공사 제주지사 현지 법인화’는 말도 제대로 붙이지 못했다. 특히 자치재정분야 핵심사안인 국가예산 법정율지원과 외국병원 유치등의 의료개방도 관련부처의 반대에 부딪혔다. 또 도전역 면세지역화, 법인세율 인하 등도 마찬가지이다.

그런가하면 전적으로 믿었던 행정자치부마저도 행정계층개편 특례법안을 별도로 추진하는등 도와 엇박자를 보이고 있다. 그야말로 도가 계획했던 바대로 되는게 거의 없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도 도 관계자들은 “이 정도면 상당한 수준”이라고 변명하고 있다니 한심하기 짝이 없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도와 청와대가 그렇게 선전해온 고도의 특별자치공화국은‘뻥’이었던가.

여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을수 있다. 우선적으로 제주도의 대중앙절충상의 문제를 짚고넘어가지 않을수 없다. 과연 도는 기본계획안을 정부에 올린이후 이의 관철을 위해 얼마나 집요하게 로비를 벌였는가.

유감스럽게도 아직까지 도지사와 부지사등이 서울에 상주하며 끈질기게 중앙절충을 벌여왔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는다. 기본계획안이 거덜난 것으로 드러난 7일에야 김태환지사가 부랴부랴 상경했다는 보도만 있을 뿐이다. 그뒤 10일에는 언론의 비판을 의식한듯 중앙절충에 총력을 편다는 보도자료가 나왔다. 버스가 지난 뒤에 손드는 격이다.

지금까지 제주도가 중앙절충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않은 데는 청와대를 지나치게 과신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하지만 지금은 과거처럼 대통령이 한마디만 하면 정부부처가 ‘알아서 기어주는’ 권위주의 시대가 아니다. 때문에 도가 대통령의 말만 믿고 청와대만 쳐다봐서는 안된다. 정권차원에서 멍석을 깔아주면 최소한 정지작업은 도가 맡아서 해야 한다.

비록 늦었지만 도는 이제라도 제대로된 특별자치도의 탄생을 위해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도가 막바지 중앙부처 및 정치권을 어떻게 설득하느냐에 따라 특별자치도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다. 그냥 우물안에서 감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릴 때가 아니다. 도지사는 물론 각 실국장들이 관련부처와 1대1 맨투맨 작전에 나서야 한다.

엄격히 따지자면 정부에도 더 큰 문제가 있다. 외교와 국방을 제외한 고도의 자치권을 아낌없이 다 준다고 생색냈다가 이제와서 슬그머니 꽁무니를 빼는 것은 도민을 우롱하는 처사이다. 단물을 빨아 먹고난뒤 용도폐기하는 것과 진배없다.

이렇게 행정계층개편에 따른 주민투표가 끝나고 나서야 정부 부처마다 딴소리를 한다면 앞으로는 대통령의 말이라도 곧이 믿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만큼 청와대와 국무총리실은 확실한 의지를 앞세워 부처 이기주의를 혁파해야 한다. 제주도민은 ‘봉’이 아니다.<진성범 /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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