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귤이 본격적인 수확철로 접어들고 있다. 이에따라 행정당국은 예년과 똑같은 말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하고 있다. “제값을 받기 위해 품질좋은 상품만 선별해서 출하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치 20세기말 낡은 레코드판을 다시 틀어놓은 것같다.

그러고보면 이때만 그러는게 아니다. 1년내내 감귤타령이다. 겨울이면 폐원과 간벌작업으로, 봄이면 적화와 적과운동 등으로 당국은 눈코 뜰새가 없다. 뿐만아니라 여름과 가을에도 마찬가지이다. 열매솎기와 수상선과운동으로, 또 감귤착색과 불량감귤 단속 등으로 한눈팔 겨를이 없는 실정이다.

그야말로 아직도 감귤은 생산에서 수확­유통­판매에 이르기까지 관의 손길이 뻗치지 않는 곳이 없다. 하나에서 열가지에 이르기 까지 모두 관이 나서서 이래라 저래라 하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누가 농사를 짓는 것인지 헷갈릴 정도이다. 언제까지 행정당국이 감귤을 어린애 키우듯 이렇게 과잉보호 해야 되는가.

올해는 그래도 감귤이 적정생산될 것으로 예상돼 그나마 조용한 편이다. 하지만 과잉생산이 우려되는 해는 온섬이 떠들썩하다. 공무원들은 본연의 고유업무도 팽개치고 온갖 감산운동에 동원되기 일쑤이다. 이같은 연례행사에 쏟아지는 행정력과 인력은 손으로 다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이다. 아직도 감귤이 관치농업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이유는 자명하다. 감귤이 여전히 제주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기 때문이다. 왕년의 대학나무 명성은 시들해졌지만 그래도 감귤은 아직까지도 관광산업과 함께 본도 지역경제의 양대 축을 이루고 있다. 그런 점에서 감귤에 대한 당국의 관심과 지원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문제는 정도가 너무 지나치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또다른 이유가 있다. 민선자치시대를 맞아 감귤가격이 득표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도지사와 시장 군수들도 앞다퉈 감귤정책에 올인하고 있는 것이다.

이때문에 보리나 채소등 밭농사를 짓는 농민들은 불만이 많다. “어디 감귤만 농사냐”는 것이다. “그래도 감귤농민들은 먹고 살만한 사람들이 많은데 왜 상대적으로 빈곤한 영세농에 대해서는 차별하느냐”는 것이다.

때는 바야흐로 세계화 개방화 시대이다. 모든 산업의 개방은 거스를수 없는 대세이다. 감귤도 예외일수는 없을 것이다. 따라서 이제는 감귤정책도 달라져야 한다. 독자생존할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데 서로 머리를 맞대야 한다. 그러지 않고서는 농산물수입개방의 세찬 파고를 견뎌낼 수가 없을 것이다.

뿐만아니라 이같은 관주도형 대증요법으로는 제주감귤의 미래를 기약할 수도 없다. 수입농산물과 대항할수 있는 경쟁력을 갖추는게 급선무이다. 자생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땜질식 행정지원은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행정의존도만 더 키워줄 뿐이다.

그런 관점에서 감귤도 이제는 ‘행정의 품속’에서 벗어나 독립을 준비해야 한다. 어린애들도 자라면서 부모의 슬하에서 벗어나 자립하는 것처럼 감귤도 어느새 독자생존할 나이가 된 것이다. 농가 스스로 해야할 일을 행정이 계속 대행해준다면 감귤은 언제까지나 ‘마마 보이’근성을 버리지 못할 것이다. 관이 민을 선도하는 시대는 지났다. <진성범 /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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