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계층개편을 둘러싼 집단반발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아직 권항쟁의심판이 결론나지않은 상황에서 시장군수들은 또 행정특별법에 대한 입법 저지에 나섰다. 이와함께 70개 단체로 구성된 지방자치수호 공동위원회는 5만6000여명의 서명을 받고 국회청원 및 헌법소원을 제출키로 했다.

이 때문에 갈 길이 먼 제주특별자치도의 앞날은 더욱 험해지고 있다. 여기에는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 굳이 따지자면 ‘역사적인 7·27 주민투표’를 통해서도 범도민적 합의를 충분히 이끌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투표율이 크게 낮은게 문제였던 것이다. 그래서 제주투표결과는 ‘방폐장 투표’이후 다시 도마위에 오르고 있다.

지난주 실시된 ‘방폐장 투표’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특히 김태환 도정에 대해서는 많은 것을 깨우쳐주고 있다. 경합을 벌였던 4개 시군지역 모두 투표율과 찬성율이 월등히 높았기 때문이다.

방폐장 부지로 확정된 경주는 70.8%의 투표율에 89.5%의 찬성율을 보였다. 탈락한 군산과 영덕 등도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36.7%의 저조한 투표율로 간신히 개표기준을 넘어섰던 제주와는 극히 대조적이다.

그런데도 당시 김지사는 최악의 투표결과를 놓고서도 “인물을 선택하는 선거가 아닌 정책선거에 있어서 이 정도의 투표율은 그나마 다행이다”고 자위했다. 뿐만 아니라 개표직후에 가진 기자회견에서는 “도민의 자치역량을 유감없이 보여준 것”이라고 자평했다.

그러나 김지사의 이같은 촌평은 ‘방폐장 투표’이후 견강부회로 귀결되고 있다. 방폐장 투표도 역시 정책투표였지만 되레 국회의원 선거보다 더 투표율이 높게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처럼 경주등이 예상외로 투표율이 높은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두말할 것도 없이 시장 군수들이 확고한 의지를 갖고 전력투구했기 때문이다. 영덕군수는 과로로 쓰러져 링거를 꽂은채 투표를 하기도 했다. 그런가하면 경주시장은 환경시민단체들의 조직적 반발에도 불구하고 삭발단식까지 하면서 투표율과 찬성율을 견인했던 것이다.

그러나 지난 7·27 주민투표때 김지사는 어떠했는가. 행정개편의 주체이면서도 이쪽 저쪽 눈치만 살피며 원론적인 중립이론만 늘어놓았다. 속 다르고 겉 다른 이중성을 드러낸 것이다.

만일 당시 김도정이 경주시장처럼 삭발까지는 안한다 하더라도, 분명한 목표와 의지를 밝히고 투표에 임했더라면 어땠을까. 아마도 상황은 180도로 달라졌을지 모른다. 특히 여론의 주문대로 혁신안 하나만을 찬반투표에 부쳤더라도 투표율과 찬성율은 더 높아졌을 것이다. 그렇게 됐더라면 지금과 같은 선거후폭풍도‘찻잔속의 태풍’으로 끝났을지 모른다.

이제라도 김도정은 과감한 결단력과 확실한 의지를 갖고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그냥 여론의 흐름에 편승하면서 우물쭈물 눈치만 봐서는 특별자치도를 성공적으로 추진할수 없다.

지난 9월 특별자치도 계획을 수립할 때 김도정은 의외의 면모를 보여 주목을 받았다. 당사자들의 집단반발에도 아랑곳없이 의료개방과 공항·관광공사제주지사의 현지법인화 계획등을 당당하게 밀어부쳤기 때문이다. 비록 꿈은 이뤄지지 않았지만 그런 김지사에 대한 당시의 여론은 호의적이었다.

지금 도민들은 그런 강력한 리더십을 요구한다. 이는 도민역량을 하나로 결집하는 필요충분조건이기도 하다. 사즉생(死卽生)의 정신을 몸소 실천할 때이다. <진성범 /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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