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새로운 5·18특별법의 제정의지를 밝혔다.이번 특별법은 5·18희생자를 민주화 유공자로 예우하고,5·18묘지를 국립묘지로 승격하는 것을 내용으로 한다고 한다.이로써 5·18문제는 국가적 보훈의 단계로까지 나아가고 있다.

 5·18문제는 그동안 두 가지 법적 해결단계를 이미 거쳤다.첫번째가 희생자와 유족에 대한 실질적 피해보상(배상)을 하는 것이었다.이것은 90년 ‘광주보상법’에 의하여 이루어졌다.두번째는 5·18책임자를 형사처벌하는 것이었다.이것은,형사상 공소시효 특례를 인정한 95년 ‘5·18특별법’에 의해서 이루어졌다.5·18관련 유죄확정자에 대한 특별재심도 이때 인정되었다.

 4·3과 5·18을 같다고 보든 다르다고 보든,어쨌든 이상과 같은 5·18해법이 4·3의 법적 해결에 시사하는 바는 크다.국가적 보훈 여부야 4·3의 성격규정 여하에 달려 있는 문제겠지만,법적으로 정당화되지 않는 주민살해 등의 인권침해에 대해서는 피해보상(배상)과 책임자 처벌이 당연한 법적 결론이기 때문이다.

 법기술적인 관점에서 시효(時效)의 문제가 있기는 하다.그러나 시효는 절대적인 제도가 아니다.95년 ‘5·18특별법’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특례 인정도 가능하다.뿐만 아니라 95년 ‘5·18특별법’을 제정할 때 ‘헌정질서파괴범죄의공소시효등에관한특례법’도 함께 제정하여,헌정질서파괴범죄와,특히 집단살해죄에 대해 형사상 공소시효제도를 일반적으로 폐지한 것에도 주목하여야 한다.

 진정한 문제는,사태 후 50여년이나 지난 현재의 시점에서,피해보상(배상)과 책임자 처벌이라는 기본적 결론을 어떻게 조정할 것인가 하는 점에 있다.대만 2·28에서 채택된 해법처럼 책임자 규명은 하되 처벌은 하지 않는다든지,피해보상(배상)을 정액 개별배상과 공동체보상이라는 형태로 변형한다든지 하는 것이 진정한 쟁점이다.

 그러나 아직 이러한 실질적 쟁점을 논할 시점에 이르지는 못했다.그동안의 조사·연구 결과 수많은 불법적 주민살해 등의 사례가 보고되고는 있지만,그것을 국가적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한 바는 아직 없기 때문이다.올해 1월 어렵사리 제정된 ‘4·3특별법’도,이처럼 인권침해사례가 공식적으로 확인된 바 없다는 전제 위에 서 있다.

 ‘4·3특별법’이,몇 가지 보상적 차원의 사업,즉,위령묘지 조성 등의 위령사업과 의료지원금,생활지원금 지급에 대한 법적,국가예산적 근거를 마련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그러나,시행령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보면,이러한 사업들은 상징적 의미를 지닐 뿐이라는 점을 쉽게 알 수 있다.현 단계의 ‘4·3특별법’은,4·3의 진상규명,특히 불법적인 주민살해 사례 등의 공식적 인정의 길을 마련했다는 데에 거의 전적인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4·3의 진상규명작업도 쉽지는 않을 전망이다.특별법상 진상규명의 핵심실무기구인 ‘진상조사보고서작성기획단’에 주어진 조사권한이 매우 취약하기 때문이다.그러므로 현재로서는 희생자와 유족들의 적극적인 피해신고가 결정적인 관건이다.특별법상 피해신고의 의미,절차,신고범위 등을 널리 홍보하는 것이 그래서 중요하다.

 ‘4·3특별법’으로 4·3문제의 법적 해결에 결정적 계기가 마련되었음은 분명하다.그러나 이번의 결정적 기회를 놓치면 4·3은 영원히 역사로 묻히게 될 가능성이 높다.그리고 그것과 함께,살아남아 있는 자들의 역사,4·3해결의 역사도 좌절로 끝나고 말 것이다.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들이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고호성·제주대 교수·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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