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미를 부르는 한방용어가 재미있다. 풍자(風刺), 즉 바람이 찔렀다는 말이다. 바람은 차다는 뜻이고 찔렀다는 말은 얼굴 피부의 말초 혈관이나 아주 가느다란 신경가지를 찬 것이 붙들고 있다는 말이다. 우리 몸은 어디든 체온이 유지되어야겠는데 찬 것이 붙들고 있으니 피가 원활히 다니지 못하고 그 자리에 멜라닌 색소가 침착되어 기미가 된다.

왜 하필 얼굴에 잘 나타날까? 얼굴은 많은 것을 나타낸다. 우리가 얼굴이 좋지 않다 했을 때, 얼굴로 일반적인 건강상태를 가늠하기도 하고 요즘의 기분을 가늠하기도 한다. 감정에 따라 얼굴이 달아오를 때도 흔히 있고, 반대로 싸늘해질 때도 있다. 감정 이외에도 내장 상태도 흔히 나타난다. 내장을 말하자면 하나도 빠질 게 없으나 위장 상태가 흔히 얼굴에 잘 나타나서 소화기능이 좋지 못하면 얼굴 피부가 거칠어지거나 여드름 같은 것이 돋는 경험이 있을 것이다. 기미도 마찬가지이다.

차다는 말은 식었다는 말도 된다. 열을 받아 얼굴이 달아오르는 일이 많은 사람은 뽀드락지 같은 염증이 잦을 것이고, 불만, 걱정, 우울, 낙심, 공포 등으로 얼굴이 식는 일이 많은 사람은 기미처럼 염증은 적으면서 말초의 순환장애로 인한 기미가 나타나기 쉽다.

그러므로 기미를 단순히 햇볕을 많이 쐬었다고 말할 게 아니라 감정과 위장상태 등으로 인하여 얼굴피부의 혈액순환이 이미 나빠진 것이 먼저라고 봐야 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치료에 있어서도 바람이 찔렀다는 말과 같이 얼굴에 다시 화색이 돌아서 찬 기운이 가셔야 기미가 사그라질 준비가 될 것이다. 거기에는 감정도 작용하고 내부 장기도 작용하니 쓰는 약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예시하면 다음과 같다.

흔히 의이인, 석창포, 백지 등으로 얼굴피부의 순환을 개선시키고자 하지만 이것만 해서는 부족하다. 백자인, 백복신 등으로 신경계통을 다스리고, 귤피, 사인 등으로 위장을 다스리는 치료를 아울러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건강(생강 말린 것) 등의 매운 기운으로 얼굴에 온기를 북돋우는 것도 이런 이유이다.<한의사·제민일보한방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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