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인들의 숨결이 밴 너븐못. 얼마나 컸길래 말그대로 '넓은못'이라고 했을까. 못 입구에 세워진 안내판에는 너븐못에 대한 이곳사람들의 애정이 배여 있다.


◈베염통·너븐못·뱅듸못(조천읍 와흘리)
 
 조천읍 와흘리는 비온 뒤 언뜻 비치는 햇살처럼 소매끝을 살포시 드리우고 편안하게 누워있는 모습이다.지세가 완만하고 천천히 바다로 흘러내린 모습 때문에 지명조차 ‘누울 와(臥)’자와 ‘산 모양 흘(屹)’자를 썼다.

 제주시에서 동쪽으로 11㎞,북제주군 조천읍에서 남쪽으로 4㎞ 떨어진 곳에 자리잡은 전형적인 중산간 마을이며 대표적인 습지로는 ‘베염통’‘벵듸못’‘너븐못’‘물터진 골’‘바농벵듸못’등을 꼽게 된다.

 이 가운데 바농(바늘)오름 자락에 자리잡은 ‘물터진 골’에서 흘러나온 물은 대흘1리의 ‘괴드르못’방향으로 흘러 내려가며 벵듸못은 물이 비교적 많이 고여 웬만한 가뭄에도 끄덕이 없다.

 벵듸못은 와흘리 상동에 있다.옛날에는 가뭄때면 이웃마을 주민들이 몰래 와 물을 떠가는 것을 막기 위해 돌아가며 벵듸못을 지켰다고 한다.

 봉천수를 받아놓은 벵듸못은 특히 수질이 맑아 제사때면 일부러 이 물을 제수로 사용했다.

 지난 97년에는 자연석을 이용해 주변을 정리했다.와흘리 상동의 유일한 식수원이었던 벵듸못이 옛 모습을 되찾은 것.지금 당장 수도물이 끊긴다면 벵듸못 물을 먹을 것이라는 이곳 주민들의 애정이 우두자국처럼 배어있다.

 못 크기는 80평 가량되며 사초과의 큰골·세모고랭이와 수련이 눈에 들어온다.

 베염통의 ‘베염’은 뱀을 뜻하는 제주말이다.뱀이 얼마나 우글거렸으면 베염통이라고 불렀을까.이 마을 김근철씨(47)는 “옛날에는 이 일대에 흔히 ‘돗줄래’‘물베염’으로 표현되는 유혈목이가 엄청나게 많았었다”면서 “특히 지대가 낮고 ‘문선사리’쪽에서 흘러나온 물이 이곳에 고여 수심도 꽤 깊었었다”고 회고했다.

 유혈목이는 파충강 뱀목 뱀과의 한 종이다.우리나라에서 흔히 볼수 있는 뱀의 일종으로 논이나 하천부근에서 생활한다.몸 길이는 50∼120cm가량 되며 대개는 녹색 바탕에 불규칙한 무늬가 있다.몸의 전반에 있는 무늬는 적색이며 목의 무늬는 황색이고 흑색무늬가 등면 중앙선 양쪽에 배열되어 있다.

 주로 개구리와 작은 물고기를 먹고 가을에 교미를 해 대략 15개 정도의 알을 낳는다고 한다.

 베염통은 그러나 이제는 그저 옛말일 뿐이다.작년 봄에 물이 더 고이게 하려고 마을에서 포클레인을 동원해 바닥을 긁어내는 바람에 이 일대 생태계가 크게 훼손됐다.

 유혈목이와 개구리는 아예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게다가 최근에는 물이 아예 고이지 않아 주민들을 애태운다.베염통은 사전 조사없이 무조건 바닥의 뻘을 걷어내는 식으로 진행되는 습지보호 활동이 얼마나 무분별한 것인가를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너븐못은 말그내로 넓은 못이다.베염통과 달리 인공못이며 ‘큰대물’이라고도 한다.얼마나 컸길래 ‘대물’앞에 ‘큰’자를 또 붙였을까.현재 200㎡가량되는 못 크기로는 언뜻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다.

 그러나 도로확장과 함께 매립되기 이전의 못 크기가 지금의 두배이상 되고 마을의 중심에 자리잡아 우마급수장과 식수로 활용되던 때를 생각하면 이해못할 바도 아니다.못 옆으로 나 있는 길조차 ‘크다’는 뜻을 담은 접두어,‘한’을 붙여 ‘한거리’라고 했다.

 이곳에는 수련(수련과)과 검정말(자라풀과)·애기마름(마름과) 등의 수생식물이 있고 붕어·자라 등이 서식한다.

 이가운데 애기마름은 1년초로 난상 마름모형이며 7월에 꽃이 핀다.마름보다 꽃·잎의 크기가 작아 애기마름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와흘리는 지난 94년 너븐못 정비사업을 벌여 생태체험 학습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자연석을 구해 돌담을 쌓고 팽나무와 철쭉·눈향나무·벚나무·동백나무들을 식재했다.아울러 주민 합의를 통해 이곳에서 농약에 물을 타는 일은 일절 금지했다.

 너븐못 입구에는 ‘우리마을 숨결’이라는 내용의 안내문이 세워져 있다.

 ‘예로부터 이 연못은 지역주민들이 우마에게 물을 먹이고 힘든 밭일을 끝내어서 몸을 씻으며 피로를 풀던 공동 목욕탕으로 주민들의 쉼터이자 정담을 나누던 장소며 선조들의 삶의 애환이 깃든 유래깊은 곳입니다.

 70년대 이후 마을에 상수도가 보급되면서 이 연못은 매립위기에 처하여 우리들의 추억속으로 사라지는 듯 하였으나 지역주민 모두의 노력으로 연못살리기 운동을 전개하여 예전의 모습을 되찾게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 마을의 애환과 향수가 깃든 이 연못을 깨끗하게 보존하여 후손 대대로 물려줍시다’

 너븐못에 가면 제 아무리 감정이 메마른 사람이라 할지라도 이 못에 대한 이곳사람들의 깊은 애정을 느낄 수 있으며 여전히 이 못이 주민들의 삶을 지탱해주고 있음을 알게 된다.<취재=좌승훈·좌용철 기자·사진=김대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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