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이웃돕기성금 모금운동. 하지만 세상인심이 각박해지면서 세밑온정도 점차 시들해지고 있다. 그런 가운데서도 변함없이 고개를 내미는게 있다. 금일봉이다.

도대체 금일봉은 얼마인가. 세간에서 말하는 금 한봉지가 아니다. 보통 기관장이나 정치인등 저명인사들이 성금으로 내는 돈이다. 액수는 직위와 위상에 따라 다르다고 한다. 시장 군수는 10만원, 그보다 높은 사람은 20만원 등으로 제각각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금일봉은 기관장들만의 전유물인가. 아직까지는 그런 모양이다. 코묻은 돈은 감히 금일봉으로 포장해주지 않는다. 서민들의 체면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탓일까.

물론 기관장들이 투명치못한 금일봉을 쓰는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 성금액이 드러날 경우 서로 비교가 될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체면이 구길수 있다는 것이다. 많으면 많은 대로, 적으면 적은대로 말이 많아지다는 것이다.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금일봉은 대부분 주머닛돈이 아니다. 세금으로 조성된 판공비 같은 것이다. 금일봉에서 따스한 온도가 배어나오지 않는 것은 이때문이다.

그런데도 굳이 액수를 감춘다는 것은 아무래도 권위적으로 밖에 비쳐지지 않는다. 금일봉으로 하면 작은 돈도 많게 보이는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렇다고 권위가 서는 것도 아니다.

세밑의 권위주의 유산은 이외에도 또 있다. 안부를 묻는 연하장이다. 하지만 고사성어 넘치는 인사말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보낸 사람의 체취를 느낄수가 없다. 대부분이 비서실에서 일괄적으로 보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연하장 어디에도 보낸 사람의 육필을 찾아볼수 없는 까닭이다.

그런 연하장은 뜯어보는 것조차 짜증이 날 것이다. 그래선지 받은 연하장을 개봉하는 일마저 비서실에서 담당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할 만큼 기관장들이 공사다망해서인지, 아니면 귀찮아서 그런 것인지 의문이다.

그런가하면 각종 표창장 수여때도 마찬가지이다. 아직도 권위주의 잔재가 도처에 깔려있다. 상장을 수여하는 기관장은 가만히 입을 굳게 다물고 있고, 저편의 사회자가 상장내용을 줄줄 읽고 내려가는 것은 또 뭔가. 권위주의가 철철 넘쳐나 볼썽사납다. 기관장의 수고를 덜어주기 위한 것인지, 마이크 사정 때문인지 종잡을 수가 없다.

언젠가 양성언 교육감이 끓어 앉아서 장애어린이에게 상장을 수여해 신선한 화제를 불러일으킨 적이 있다. 이른바 수요자의 눈높이에 맞춘 시상이다. 다른 기관장들도 그렇게는 못한다하더라도 최소한 대독없이 직접 육성으로 상장을 전달하는 성의를 보일수는 없을까.

그나마 최근들어서는 각종 기념식장이 새롭게 바뀌어 보기에도 좋다. 각급 기관·단체장들이 단하에 일반 참석자들과 함께 나란히 앉아있는 모습은 언제 봐도 화기애애하다. 위화감을 넘어 일체감이 조성되기 때문이다.

우리사회의 권위주의와 특권의식은 산업화를 거치면서 더욱 팽배해지고 있다. 지나친 위계질서 강조에 따른 부산물이다.

그러나 이 시대의 지도자는 대중과 유리되어 그 위에 군림하는 특권계급이 아니다. 서민과 호흡을 같이 하고 동고동락할 때 더욱 존경을 받게되는 것이다. 권위와 권위주의를 혼동해서는 안된다.<진성범·주필>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