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선이 유력시되던 이원종 충북지사가 불출마를 선언했다. 오는 6월말 임기를 마친 후에는 정계에서도 은퇴하겠다고 밝혔다. 최근 여러 여론조사에서 그에 대한 지지도는 50%에 이르고 있다.

그래서 그의 은퇴선언은 새해벽두에 신선한 충격을 던지고 있다.

그는 왜 당선이 확실시되는데도 대망의 꿈을 접고자 하는 것인가. 64세의 나이 때문이 아니다. “늦잠도 자고 싶고, 잃어버린 내 자신을 찾고 싶다”고 했다.

그의 이같은 결단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충청인들 뿐만아니라 국민들도 “당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이 지사가 최고 정점에서 용퇴 결정을 내린 것은 아름다운 일”이라고 찬사를 보내고 있다. 한줌도 안되는 권력을 놓치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정치인들에게 많은 것을 생각케 한다.

이같은 아름다운 용퇴는 제주농협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2년 임기만 채우고 37년의 농협생활을 마감한 진창희 농협제주지역본부장이 주인공이다. 55세밖에 안된 그의 용퇴의 변은 충북지사와는 다르다. “젊고 유능한 후배들에게 길을 터 주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진 본부장의 용퇴로 제주 농협수장의 조기사퇴는 이제 아름다운 전통으로 자리매김되고 있다. 그래서 자리에 연연하는 다른 공직자들에게도 많은 것을 깨우쳐 주고 있다. 타시도 농협들이 놀랍고 부러운 시선을 보내는 이유이다.

농협수장의 후배에 대한 내리사랑은 2001년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고성돈 농협제주지역본부장이 후진들에 길을 터준다는 명분으로 정년(58세)을 2년 남겨두고 조기 사퇴한 것이다. 정년 1년전에 명퇴를 해오던 관례를 깨는 것이어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그의 바통을 이어받은 오승휴 전 농협제주지역본부장도 어김없이 선배의 길을 뒤쫓았다. 오 본부장은 나이가 55세 밖에 되지 않는데도 2003년말 약속이나 한 듯이 조기사퇴했다. 고 전본부장보다 하루도 더 그 자리에 앉는 것을 고사한 것이다. 정년을 3년이나 남겨두고 농협을 떠난 셈이다.

이에따라 농협제주지역본부는 2년꼴로 수장이 바뀌는 사이클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그래서 적체된 인사숨통도 트이면서 조직에 활력을 불어넣는 계기가 되고 있다. 이번에도 진 본부장의 명퇴로 연쇄적인 승진인사가 대기중이어서 직원들의 가슴을 뛰게하고 있다.

사실 정년보다 3∼4년이나 앞서 공직을 떠난다는 것은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세상에 돈이 아깝지 않고, 명예와 권력이 탐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래서 대부분의 고위 공직자들이 조금이라도 더 ‘생명’을 연장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형국이다.

그도 그럴 것이 평생을 공직에 몸담아온 공직자들에 있어 퇴직은 불안한 일이다. 아무도 없는 황량한 벌판으로 내몰리는 두려운 심경일 것이다. 그래서 단 하루라도 더 고위공직을 붙잡고 싶은게 인지상정인지 모른다.

그러나 산은 오를 때보다 내려올 때가 더 어렵다고 하지 않는가. 정치나 공직도 마찬가지이다. 나아갈 때보다 물러날 때가 더 어려운 것이다. 여간 고독하고 힘겨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떠나야 할 때를 분명히 알고 떠나는 공직자는 아름답다. 그래야 은퇴후에도 원로로서 존경과 사랑을 받게되는 것이다. 물러나야 할 때를 놓쳐 명성을 더럽히는 사람이 어디 한둘이던가. <진성범 /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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