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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이재수 신원위해 탄원서 띄워
현순실
입력 2006-01-17 (화) 21:16:31 | 승인 2006-01-17 (화) 21:16:31 | 최종수정 (화)
   
 
  ▲ 추사적거지 맞은 편에 세워진 삼의사비. 이 삼의사비 아래 이순옥이 마을 주민을 설득해 세운 옛 삼의사비가 매장돼 있다.  
 
“어리석고 미혹한 어린 계집아이가 각하전에 활달스럽게 무슨 말씀을 올리리까마는 원통한 마음으로 진성서를 올리나이다”.

이재수의 누이동생 이순옥(1897∼1982)은 신축년 제주항쟁(1901년. 일명 ‘이재수의 난’) 이후 오빠 이재수를 신원(伸寃·억울하게 뒤집어 쓴 죄를 씻음)하기 위해 1928년 2월 26일 당시 조선 총독부에 탄원서를 올렸다. 그녀는 이에 그치지 않고 1982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독신으로 살면서 이재수를 해원할 생각과 실천으로 한시도 쉬지 않았다.

1901년(신축년) 20세기 벽두에 발생한 ‘이재수의 난’은 제주근대사에서 가장 커다란 사건이었다.

‘이재수의 난’은 천주교의 교세 확장과 이에 따른 폐단(교폐), 정부의 조세 수탈(세폐) 등이 원인이 되어 일어난 사건이다.

“이재수가 장두로 나선 민군은 도민들을 규합, 세력을 강화시켜 제주읍성 남쪽 황사평에 주둔하였다. 이로부터 민군과 제주읍성으로 쫓겨들어간 교민들 사이에 상호 살상이 이어졌다.

결국 서로의 접전 끝에 제주성내의 주민들에 의해 성문이 열리자, 민군이 성내로 진입하여 제주성을 장악하고 교민들을 관덕정 앞에 모아 놓고 살해하는 참극으로 귀결되었다.

당시 민란의 과정에서 피살된 자들은 교민 309명, 평민 8명 등 317명(1901년 평리원 안종덕의 보고서)에 이르렀다. 결국 찰리사 황기연이 파견, 이재수 등 민군의 지도자들을 체포해 서울로 압송함으로써 사건은 진정되었다.

1901년 10월 이재수·오대현·강우백 등 세 장두는 교수형에 처해졌다. 피살된 교민들 중 연고가 없는 이들의 시신은 프랑스의 압력에 의해 천주교 공동묘지가 된 황사평에 묻혀 있다”(「1901년 제주항쟁기념 역사미술전」의 박찬식 편).

‘이재수의 난’이 끝난 지 27년째인 1928년 제주도 대정면 인성리에 사는 이순옥(당시 31세)이란 여인이 조선총독 앞으로 탄원서를 올렸다. 내용인 즉, “오빠인 이재수의 억울한 죽음을 탄원하고, 오빠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추모비라도 세워줄 것을 간청”하고 있다.
탄원서의 주인공인 이순옥은 1897년 이시준(李時俊)과 송(宋)씨 사이에서 다섯째이자 막내로 태어났다.

이순옥은 반평생을 신축년 제주항쟁의 장본인이자 오빠인 이재수를 해원할 생각으로 반평생을 살았다. 일제때에는 오사카에서 제봉을 하고 돈을 모아서 오빠 이재수의 억울한 행적을 「李在守 實記」(1932년. 조무빈·이순옥 공저)에 저술해 세상에 알리고자 했다.

이재수의 누이동생 이순옥에 대한 글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李在守 實記」와 2003년에 개최된‘ 1901년 제주항쟁기념 역사미술전’에서 그녀 모습과 탄원서 내용 일부(고길천 작 ‘일어나라, 일어나라’), 「한국인의 맥」(이규태 지음. 1987년)이 고작이다. 「한국인의 맥」에는 이순옥을 이렇게 소개했다. “일제 때 두 젊은 부인이 성서를 베개 삼으며 제주도를 방랑해 한 푼, 두 푼 돈을 모으고 다닌 일이 있다.

두 여인 가운데 하나는 교인을 학살한 오빠를 속죄하고자 교인이 된 이재수의 누이(이순옥)요, 다른 한 여인은 이재수를 사랑했던 대정의 관기(官妓) 일지홍이었다. 이들은 오빠와 애인을 위해 고행하면서 돈을 모두어 대정에다 역적으로 몰리어 망각되고 있는 오빠의 사적을 적은 비석을 세워놓았다”

이순옥은 실제 1961년, ‘이재수의 난’ 60주기를 맞아 마을 유지 등 주민들을 설득시켜 대정 홍살문 거리에 이재수·오대현·강우백을 기리는 ‘제주대정군삼의사비’를 세웠다. 그러나 무슨 연유에선지 드랫물 앞에 버려졌다. 이유 중에는 천주교측의 압력때문이다는 설도 있다. 그랬던 것이 1997년 마을청년회가 추사적거지 맞은 편에 새로운 삼의사비를 세우면서 ‘제주대정군삼의사비’는 현재 삼의사비 밑에 매장해버렸다.

이순옥은 ‘제주대정군삼의사비’를 세운 이후 서귀포에 정착해 서귀포 제일교회를 다니며 평생 교인으로 지내다가 1982년 세상을 떠났다. 그녀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만날 때마다 오빠의 의로운 죽음을 이야기했다” 고 말했다. 이재수의 죽음이 헛되지 않음을 세상에 알리고자 반평생을 살았던 이순옥의 숭고한 정신을 위해서라도 매장된‘제주대정군삼의사비’는 복원되어야 한다. 동시에 이순옥의 생애를 돌아보는 연구도 뒤따라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제주역사기행」(한겨레신문사·이영권 지음)
-「李在守 實記」(조무빈·이순옥 공저)
-「1901년 제주항쟁기념 역사미술전」(역사
학자 박찬식 편)

현순실  sshyun@jemin.com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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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임 2007-07-03 05:3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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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임 2007-06-29 20:2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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