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의회가 또다시 일을 저질렀다. 모처럼 주어진 도의원 선거구획정 권한을 스스로 내동댕이친 것이다. 이렇게 주는 떡도 제대로 받아먹지 못하는 도의회가 과연 제주특별자치도의 헌법이나 다름없는 조례를 제대로 제정할수 있을지 걱정이다.

지난 15일 도의회는 선거구획정 관련 조례안을 부결시켰다. 이에따라 어렵사리 따온 선거구획정 권한은 다시 중앙으로 U턴하게 됐던 것이다. 우리 도의원들이 자치역량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선거구획정 권한은 도와 도의회가 정부와 국회를 오가면서 조르고 설득해서 간신히 이양해온 것이다. 그런 것을 도의회가 특권의식에 도취돼 제멋대로 주무른다는 것은 용납할수 없는 일이다. 엊그제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도의회가 거부한 선거구획정안을 일고의 가치도 없이 원안대로 확정하면서 얼마나 우리를 비웃었을까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거릴 따름이다.
물론 도의회의 부결처리 자체를 나무랄 수만은 없다. 의결권은 도의회의 고유권능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그럴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부결이 소신에 의한 것이 아니라 착오나 실수에서 빚어졌다는데 있다. 여간 창피스런 일이 아니다.

이날 투표결과는 재적의원 19명 가운데 찬성 9표, 반대 8표였다. 나머지 2표는 ‘찬’과 ‘가결’이었다. 따라서 2표중 1표만 찬성표로 인정되면 과반수를 넘어 조례안이 가결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도의회는 난상토론 끝에 ‘문제의 2표’에 대해 찬성표 여부를 결정하는 투표를 실시했다. 의정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다. 하지만 재투표 결과도 충격적이었다. 이번에는 찬성 9표, 기권 7표, 반대 2표로 나타나 결국 2표는 무효표로 처리케된 것이다.

신성한 의사당에서 어떻게 이렇게 저속한 코미디가 벌어지는지 한심하기 짝이 없다. 제 의사표시도 제대로 못하는 도의원의 자질도 문제지만, 무려 7명의 도의원이 기권한 것은 도무지 이해할수 없는 처사이다. 진짜 분별능력이 없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마지막으로 한번 심통을 부려본 것인지 종잡을 수가 없다.

더 큰 문제는 이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점이다. 앞으로가 걱정이다. 이런 저질의 도의회가 지금 코앞에 산더미처럼 쌓여진 특별자치도 조례들을 제대로 처리할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미 도는 특별법이 통과되자 총 97건의 조례중 1단계 후속조치로 68건의 조례에 대한 입법 예고를 시작했다. 이들 조례는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게 없다.

그러나 기표도 제대로 못하는 도의원들이 과연 이들을 제대로 심의할수 있을까. 평소실력도 변변찮은 마당에 지방선거마저 닥쳐와 부실하게 다뤄지거나 졸속으로 처리될 우려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도의원들은 이미 마음은 표밭에 가있기 때문이다.

지난주 제주지방자치학회와 제주대 사회과학연구소등이 공동 주최한 ‘제주특별자치법제와 주민참여법제’ 학술발표대회에서는 “대폭적인 입법권의 확대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제주자치도의 자율적 입법역량을 획기적으로 강화해 나가야 한다”는 주문이 쏟아졌다.

따라서 이번 도의원 선거에서는 유능한 전문직들이 대거 약진하여 의정활동을 한단계 업그레이드 시켜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제주특별자치도는 이번처럼 거꾸로 뒷걸음질 치고 말 것이다.<진성범 /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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