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정책 실패 사례

지난해 11월3일 경상북도 포항과 경주, 영덕, 전라북도 군산 등 4개 시·군에서는 방사성폐기물 처분장(방폐장) 유치를 위한 주민투표가 실시됐다. 주민투표 결과, 가장 높은 89.5%의 찬성률을 보인 경주가 최종 후보지로 낙점됐다. 국책사업 사상 최초로 주민투표를 거쳐 결정되는 순간이었다. 물론 주민투표 과정에서 잡음도 많았고, 방폐장을 유치하지 못한 지역에서는 책임 소재를 놓고 극심한 후유증을 앓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국가적 난제를 국민과 정부가 하나되어 오랫동안 묶여 왔던 매듭을 풀었다’다는 의미에서 주민자치의 진정한 실현이라는 평가가 우세한 듯 하다.


>6< 국책사업 도민합의 실패


방폐장 건설사업은 국가가 추진한 국책 사업임에도 불구하고 9차례나 부지선정에 실패하며 19년 동안 표류했다. 결국 ‘주민투표’를 통해 국가의 숙원사업이 해결된 셈이다.

하지만 지난 2003년 부안 사태가 상징적으로 말해주듯, 방폐상 건설사업은 그 동안 시위와 폭력으로 얼룩졌다. 방폐장 건설의 필요성과 시급성은 대부분 인정했지만, 구체적 장소 선정을 둘러싸고 이해 관계자들 사이에 의견이 극도로 엇갈렸기 때문이다.

제주도에도 이 같은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남제주군 대정읍 우주발사기지 건립사업이다. 최근 논란을 빚고 있는 화순항 해군기지 문제도 마찬가지다.



▲우주센터 유치실패 ‘명암’

과학기술부는 지난 1998년 후반기에 대정읍(마라도)에 한국 최초의 우주센터를 건설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물론 전국 11개 후보지 가운데 △발사 방위각 △안전영역 확보 △비행경로 △분리된 로켓의 낙하지점 안전성 등을 종합 분석한 결과였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추진되는 사업이어서 관련자료가 태부족, 도민들의 통일된 의견을 도출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았다.

이 때문에 주민들은 송악산 관광개발에 부정적인 영향과 로켓발사로 인한 피해가 우려된다며 우주센터 건립을 반대했다. 또한 ‘우주센터=군사시설’로 인식되면서 우주센터는 향후 평화의 섬을 지향하는 제주도에 맞지 않다는 반대 목소리가 우세했다.

물론 이를 유치해야 한다는 의견도 만만찮아 이를 둘러싸고 도민사회는 찬·반 양론으로 갈라져 소모적 논쟁만 일삼았다. 제주도는 이 같은 도민사회의 찬·반 양론에 대한 합의도출에 실패, 그해 5월 우주센터 유치에 반대한다는 공식 입장을 표명한다.

결국 과학기술부는 2001년 1월 전라남도 고흥군 봉내면 일대 150만평을 우주센터 개발예정지로 확정, 제주도는 모처럼의 기회를 허공으로 날려버리게 된다.



▲고흥은 ‘우주항공 중심도시’로 도약

5조원이 넘는 예산이 들어가는 우주개발 중장기 기본계획은 2015까지 1.5t급 저궤도 위성을 발사할 수 있는 발사체를 개발하고 모두 9기의 인공위성을 발사한다는 계획을 담고 있다.

현재 우주센터 건립사업이 한창 진행중인 고창군은 오는 2007년 말이면 ‘우리가 만든 과학위성을 우리 땅에서 발사하는’ 꿈이 자신들 고장에서 현실화된다며 들떠있다.

우주센터 건립사업은 당장 위성발사가 흔하지 않아 아직까지는 지역경제에 파급효과를 미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주센터가 완공되면 우주항공산업 전반의 발전을 꾀할 수 있어 장기적으로 보면 막대한 파급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산업연구원은 우주센터 조성만으로 8000억원이 넘는 생산유발 효과가 있고, 1만1000명의 고용창출 효과를 거둘 것이란 분석자료를 내놓기도 했다.

고흥군은 이를 토대로 ‘우주항공 중심도시’로의 발전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전라북도의 서남단에 위치한 작은 고을이 세계에서 13번째로 인공위성 발사장을 보유하며 미국과 일본 등 우주선진국들과 어깨를 견줄 수 있는 미래최첨단산업의 메카로 우뚝 서고 있는 것이다.

반면 제주도는 각종 과학시설과 연구소는 물론, 국내외 유수한 석학들과 우주산업과 관련한 각종 세미나 등을 유치할 기회를 스스로 포기, 명암이 엇갈리고 있다.



▲도민합의 시스템 구축 절실

우주센터 유치 실패를 두고, 서울에 사는 제주출신 한 인사는 “제주가 달콤한 이상만을 꿈꾸며 한가하게 해변가에서 모래성을 쌓다가 허물고 또 허무는 사이에 경쟁도시들은 든든한 철옹성을 쌓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고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혐의시설로 인식되는 순간(종국에는 그렇지 않았다면 후회하는 경우가 많지만) 그 사업이 국책사업이라고 한들 주민들에게는 반대의 목소리만 크게 울릴 뿐이다.

하지만 정책을 결정하기 전에는 반드시 다양한 대안을 면밀하게 검토해야 한다. 정치적, 사회적, 행정적, 경제적인 관점에서 냉철하게 비교·분석할 수 있는 여건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당시 정책결정에 있어 중요한 위치에 있던 제주도 당국은 전문가들에게 이에 대한 연구와 토론을 할 기회와 시간을 주기는커녕 오히려 빼앗았다.

이 때문에 도민의 대표자임을 자임하는 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들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반대의 목소리가 두려워 뒤짐을 지기보다는 공정하고도 최고의 전문가를 선정, 활발한 논의의 장을 만들어 가는 것이 도민합의의 전제조건임을 명심해야 한다.

아울러 전문가를 비롯해 각계 각층이 참여하는 사회협약위원회 등의 도민합의 시스템 구축도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