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월요일 KBS 제주방송국의 주최로 제주도에서 처음 열린 4·3추모국악제에 가족과 함께 감상하는 시간을 가졌다. 가슴을 울리는 해금연주, 현대와 고전의 음악을 넘나든 가야금 연주, 4·3의 아픔을 모래로 승화시킨 샌드 애니메이션, 심청이가 인당수에 빠지기 전 심정을 구슬프게 노래한 판소리 등을 통해 참석한 4·3유족들과 도민들은 과거의 한과 아픔을 다시 뒤돌아보며 현재의 아름다운 제주가 어떻게 이어졌는지 생각하는 시간이었다.

58년전 4월 제주 땅에 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죄가 되었고, 수만명의 양민들이 영문도 모른 채 억울하게 죽어갔던 때가 있었다.

유족들은 반세기 동안 입이 있어도 말로 표현하지 못했다. 한 유족은 현장인터뷰에서 자신이 4살 때 4·3으로 아버지와 큰형님을 잃고 홀어머니와 한 많은 세월을 살아왔다고 고백했다.

필자의 어머니 또한 4·3때 어머니와 삼촌, 할아버지 등 일가친지 7명을 잃었다. 외증조할머니는 이때의 충격으로 평생 맹인이 되었고, 당시 4살이었던 어머니는 4·3때 가족이 죽었다는 이유로 멸시를 받고, 이 한을 가슴에 새기며 365일을 거의 밭일로 생계를 이어왔다.
4·3때 돌아가신 분들을 위해 연간 십여 번의 제사, 벌초를 생의 가장 소중한 것으로 여기면서 살아왔다.

어디 한 많은 세월을 사신 분들이 이들 뿐이랴. 4·3때 제주의 이 마을 저 마을마다 부모 잃고, 자녀 잃은 사람들의 울분이 제주의 산야에 울려 퍼졌고, 유족들은 통곡과 한을 가슴에 묻은 채 반세기를 숨죽이며 살아왔다.

그러나 역사의 수레바퀴는 4·3의 한을 진실로 돌려놓고 있다. 아직은 미흡하지만 4·3특별법의 제정, 4·3평화공원 건립이 되고 있고, 4·3평화재단 설립이 추진되고 있다. 제주도, 제주시 등 지방자치단체들은 4·3행사를 적극 주최해 도민들에게 응어리졌던 4·3의 한을 도민과 함께 하는 축제로 승화시키고 있다.

올해 4·3행사는 전국학술대회 개최, 전국 각지의 유명인사 참석, 해외동포 참석 등으로 전국적인 차원의 행사로 승화되고 있다.

요즘 제주에서는 신문, TV, 라디오 방송매체를 통해서 4·3에 대한 기사가 봇물을 이루고 있다. 4·3음악제, 연극제, 전야제, 위령제, 역사순례 등 많은 행사들이 4·3주간에 개최되고 있다.

교육행사로는 전교조가 4·3교육주간을 선포하여 적극적으로 4·3의 의미를 알리고 있고, 4·3도민연대에서는 초등생을 대상으로 한 4·3웅변대회를 제주도청강당에서 개최하여 어린학생들에게 역사의 의미를 새기고 있다.

그런데 역사의 진실을 교육해야 할 제주도교육청은 도민의 관심이 집중된 4·3주간을 소극적으로 대응하고 있거나,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 하고 있는 것 같아 유족회를 맡은 한사람의 입장에서 씁쓸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학교 개별적으로 묵념 정도는 가능하다고 보도하고 있는데, 이번 4월 3일에는 학교에서도 무고하게 돌아가신 4,3영령에 대한 묵념행사나 4·3 체험학습을 통해 생명과 평화의 소중함을 새기는 시간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다행히 일부 학교에서는 4·3공원을 찾는 등 현장체험행사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기쁨을 나누면 배가된 기쁨을 맛볼 수 있고, 슬픔을 나누면 나누는 만큼 가벼워진다고 하였다.

이번 주말에는 많은 도민들이 가족과 함께 4·3행사 공연장이나 4·3평화공원을 찾아보길 권하고 싶다.

58년 동안 묻어두었던 한과 질곡의 제주역사가 올 4·3주간에는 화해와 상생의 의미를 새기는 시간을 가짐으로써 진정한 평화의 섬 제주로 거듭나는 계기가 되길 간절히 소망해 본다. <오승학 / 제주도4·3사건희생자유족청년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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