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이 돌아왔다. 제주가 4월 내내 슬픈 것은 아마도 4·3의 광풍이 물려준 58년 전의 그 기억 때문이리라. 이번 주 책마을은 4·3을 주제로 한 소설, 시, 산문들로 ‘그 날’을 재기억해본다.

□ 시로 피워낸 4·3

김경훈 시인의 시집 「한라산의 겨울」·「고운 아이 다 죽고」 (삶이보이는창)는 4·3의 와중에 참혹하게 죽어갔던 제주섬 사람들이 당한 인권유린의 보고서다.

대대적인 검거선풍과 연이은 고문치사사건, 서북청년단 등 반공우익청년단체의 야만적인 횡포에 맞서 제주도민들은 생존을 위한 저항을 할 수밖에 없었던 당시 상황이 파노라마처럼 시 전편에 흐른다.

김 시인은 4·3의 비극적 역사를 죽임의 역사로 직설적이고 고통스러운 언어로 표현함과 동시에 가벼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왜곡된 역사를 자신의 문학으로 당당히 고발하고 있다.

허영선 시인의 시집 「뿌리의 노래」(당그래)는 현대사의 피어린 비극 제주4·3에 대한 절절한 증언이다. 그러나 그 목소리는 지나치게 칼칼한 것이 아니다. 비극의 역사를 서정의 이름으로 정제시켜 신선하기까지 하다.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그 동안 역사 속에서 가려졌던 4·3의 여인들을 불러내고 있다. 22년간의 신문기자 생활에서 체득된 주제의식으로 전혀 가볍지 않은 서정과 무게로 도처에서 무명의 이름들을 애정 어린 시선을 거둬들인다.

여인열전, 유채꽃 필 때, 흙, 돌아서 오는 길 등 4부로 구성된 시집에서 시인은 험한 시대를 살면서 강건하게 삶을 이어왔던 제주여인들의 한을 노래한다.

□ 소설·산문으로 피워낸 4·3

제주 소설가 오성찬씨의 소설선집 「한라구절초」(푸른사상사)는 ‘제주의 마을시리즈’를 통해 4·3이 제주민들의 가슴에 어떤 생채기로 남아있는가를 꾸준히 발굴해온 작가의 증언 기록이다.

이 소설집은 4·3때 경찰 트럭에 실려가 돌아오지 않는 사람들(「한라구절초」), 전 토벌대 연대장의 입을 빌어 이덕구 친위대가 궤멸하기까지 경위(「보춘화한뿌리」), 4·3의 후일담(「바람의 늪」)과 근작 「바람불어 좋은 날」, 「유년의 부활」 등 중편 6편과 단편 3편을 실었다.

소설가는 전작품을 통해 4·3에 얽힌 민중의 아픔을 치유함과 동시에 무슨 이유인지도 모른채 끌려가 해변 백사장에서 혹은 빈들에서 무더기로 총살당해 죽은 제주 4·3의 3만이 넘는 넋들의 상처를 보듬는다.

임철우씨의 장편소설 「백년여관」(한겨레신문사)은 삶과 죽음을 한꺼번에 보듬고서 이 지상에서 견뎌야만하는 사람들의 가슴아픈 이야기다.

소설은 그림자섬(영도·影島)의 ‘백년여관’을 중심으로 일제시대부터 4·3항쟁, 6·25때의 보도연맹사건, 80년 광주까지 우리나라 100년의 역사를 ‘백년여관’에 모인 인물들의 갖가지 사연을 통해 그려냈다.

백년여관 주인 강복수와 설분네, 신지, 조천댁 등 4·3때 죽은 혼들(‘푸르스름한 손’)과 함께 살아가는자들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지던 소설은 104년만에 찾아오는 개기월식날 무당인 조천댁이 4·3때 죽은 혼들을 위한 한바탕 굿으로 끝맺는다.

고설가 고은주씨의 장편소설 「신들의 황혼」(문이당)은 제주 4·3의 살육에서 살아남아 인천 상륙 작전에 투입된 3000명의 제주 청년 중 하나였던 아버지의 과거, 그리고 8·15나 6·25와 같은 역사적 사건과는 무관하게 살아가는 젊은 여성인 나의 현재를 병치시키는 모자이크식 구성을 통해 가족의 의미와 잊혀져 가는 현대사를 되돌아보게 하는 소설이다.

작가는 이 소설에서 그녀로 대표되는 가벼운 세대와 아버지로 대표되는 무거운 세대가 엄연히 공존할 수밖에 없는 우리 사회의 현실을 직시하고 두 세대의 이야기를 교차시켜 나열함으로써 소설 형식의 실험을 시도했다.

제주 4·3의 비극과 설문대할망 설화, 1960년대의 부산과 2000년대의 서울, 오사카, 제주의 풍경 등을 파노라마처럼 펼쳐놓으며 화석화된 현대사에 생기를 불어넣고 가족의 의미와 존재의 근원을 성찰한다.

제주 시인 김수열씨의 산문집 「섯마파람 부는 날이면」(삶이 보이는 창)은 제주의 오름, 바다, 돌, 바람, 진한 사투리들, 제주의 억센 사람들과 그들의 고난에 찬 기억들, 4·3항쟁의 슬픈 역사를 이야기한다.

뜨문뜨문 아픈 역사를 돌아보는 그의 시선은 제주를 아는 사람들에게 코끝이 싸한 슬픔마저 불러들이고 있다.

참혹한 4·3의 기억을 천착하면서 진저리 쳐질 역사를 똑바로 응시해온 시인에게 문학은 다름아닌 예술이면서 또한 무기여야 한다는 생각은 먹돌처럼 강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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