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과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는 비슷한 점이 많다. 두 사람 모두 정치에 입문하기 전에 인권 변호사를 지냈다. 넉넉지 않은 가정형편에 각각 부산상고와 야간학교를 졸업, 성공을 일궈낸 대표적인 자수성가형이다. 뛰어난 화술과 탁월한 논리 역시 두 사람의 공통점이다.

두 사람은 의전이나 격식을 따지기 보다 현안 문제 토론에 중점을 두는 스타일이다. 외교 분야에서 다소 반미적 성향을 띤 ‘제3의 길’이나, ‘혁신’을 제1의 국정과제로 삼는 것도 똑같다. 슈뢰더 총리는 집권초기 성장보다는 분배나 복지를 강조했었고 이후에는 노 대통령의 실용주의와 비슷한 친시장적 정책을 폈다.

무엇보다 두 사람이 닮은 점은 통철한 과거사 반성위에 그에 상응하는 조치들을 진행하며 ‘역사 바로세우기’에 노력한다는 것이다.

슈뢰더 총리는 2004년 8월 폴란드 아우슈비츠 유대인 수용소 해방 60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희생자들에게 머리를 숙였다. 그는 당시 “폴란드를 점령해 무고한 사람들을 희생시킨데 대해 우리는 다시 진심으로 머리를 숙인다”며 용서를 빌었다. 슈뢰더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 60주년을 맞아 유럽 각지에서 열린 행사에도 적극적으로 참여, 과거를 반성함으로써 유럽의 결속을 다져나가는 행보를 보였다. 독일 정부는 지금까지 나치 피해자와 희생자들에게 1400억 마르크(약 84조원)를 지불했다.

노 대통령은 2003년 10월 제주를 방문한 자리에서 4·3과 관련, “과거 국가권력의 잘못에 대해 유족과 제주도민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사과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며 머리를 숙였다. 2005년 1월 제주평화의 섬 서명식에서는 “과거의 잘못을 사과하고 위로하는 일은 아무리 많이 해도 과하지 않다”며 “과거의 잘못을 부끄러워 할 줄 모르는 것이 심각한 것 아니냐”고 했다. 그리고는 1년 뒤 4·3 58주기 위령제에 직접 참석해 헌화 분향했다.

물론 노 대통령과 슈뢰더 전 총리의 사과 한 마디나 기념식 참석으로 과거의 상처가 치유되거나 역사를 되돌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다시는 제주도민이나 유대인들이 겪었던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길 기원한다.<이태경·정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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